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절기상 일 년 중 날씨가 가장 덥다는 복더위다. 삼복(三伏) 가운데 첫째 복인 초복(初伏)이 닷새 전에 지났고, 앞으로 또다시 닷새 있으면 중복(中伏)이다. 중복일로부터 20일 지나면 말복(末伏)이다. 무엇보다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잘 넘겨야 하겠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 전해오는 기록들에 따르면 예전에는 복날에 곡식이 크게 자라고 넝쿨이 많이 뻗어 나가라는 뜻에서 국수와 좁쌀밥 등을 장만해 논이나 밭에 나가서 축원했다. 논밭 복판에 성줏대라는 버드나무를 꽂아 놓고 그 앞에 음식을 차린 뒤 농사가 잘 되기를 빌었다. 국수는 곡식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좁쌀밥은 열매가 많이 맺히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복날에는 이처럼 한 해 농사의 풍작을 비는 의례가 행해졌다.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그 중 잘 알려진 대로 쌀은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여든여덟 번에 달하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손을 거친다고 한다. 쌀 미 ‘米’ 글자를 파자(破字)풀이하면 ‘八十八’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쌀의 소중함을 표현하는 말에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문구가 있다. 쌀 한 톨을 생산하기까지 농부는 일곱 근의 피와 땀을 흘려야 한다는 말이다. 쌀 생산에 들어간 농부의 노고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당(唐)나라 시인 이신(李紳)은 ‘민농(憫農)’이라는 시에서 농사 짓는 사람의 노고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논에서 김을 매는 데 한낮이 되니/ 벼 포기 아래로 땀방울이 떨어지누나/ 그 누가 알아주랴, 소반 위에 쌀밥이/ 알알이 모두 농부의 고된 수고로움임을(鋤禾日當午 汗滴禾下土 誰知盤中餐 粒粒皆辛苦)." 

지금은 사라진 "쌀 한 톨의 무게를 알라"고 가르치던 조상들의 밥상머리 교육이 아쉽다. 오늘도 먹다 남겨 버려지는 잔반이 음식쓰레기통에 넘쳐난다. 

한 대학의 경우 학생식당에서 잔반량이 하루 평균 600㎏에 달해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학보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그것도 음식물쓰레기의 대부분이 자율 배식되는 음식이었다. 학생들이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식사 습관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영양사의 주문 아닌 주문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세계 각 나라가 식량위기를 겪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후 흑해를 봉쇄하면서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의존했던 아프리카는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한다. 때문에 유럽연합 제국들은 "아프리카 난민들을 EU 국가들이 분산 수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고민하면서 대책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계 각국 모두 자국이익우선주의다. 식량 자급자족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떠한 우방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냉혹한 국제 현실임을 자각해야 한다. 

식량전쟁이 시작된 지는 이미 오래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나비효과인지 유럽 제국의 전쟁으로 곡물을 비롯, 채소류 등 모든 농산물 공급이 달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정부는 나름대로 처방을 내놓는다고 하지만 백약이 무효하다. 

지난 5월 세계 밀 생산량 2위 국가인 인도가 식량안보를 내세워 밀 수출을 전격 금지해 국제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그러잖아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치솟은 밀값이었다. 밀 가격 상승은 큰 타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경우 국산 밀 자급률은 0.8%가 고작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밀 가격의 고공행진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로 인한 밥상물가는 급등을 거듭한다. 밀가루로 만들어지는 빵과 과자를 비롯해 면류 제품들의 가격 상승으로 서민 가계는 주름을 더하고 있다. 

보릿고개가 끝난 지 그 얼마나 지났는가. 지중해 아프리카 식량난민 소식이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성하(盛夏)의 따가운 햇살 아래 들녘에선 온갖 곡식이 영글어 가고 있다. 농사 날씨 고르지 못하지만 그래도 풍년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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