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고목 아래 앉아 유유자적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 고된 일상의 부스러기를 함께 흘려보내기 쉽다. 그렇게 아주 잠시라도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는 소리를 들으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듯싶다.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대한민국 명승 제109호 ‘수종사’에 가면 500년 이상 자리를 지키는 은행나무를 만나게 된다.

수종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샘에서 물이 돌 틈으로 흘러나와 땅에 떨어질 때 종소리가 난다’는 의미를 담았다.

운길산 중턱에 자리잡아 두물머리가 한눈에 보이는, 특히 일출·일몰시간 자연의 그윽함을 마음 가득 담아가기에 제격이다. 차 한잔의 여유는 ‘삼정헌’에서 누려 봄직하다.

특히 은행나무 바로 옆에 앉아 산들바람에 잠시 자신을 맡기며 자연의 정취를 천천히 느끼게 된다. 봄·여름·가을·겨울 모두 색다른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수종사는 조선시대 문인 서거정이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했을 만큼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수종사는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보물 제1808호로 지정된 ‘팔각오층석탑’에서 나온 ‘금동석가불좌상’은 조선 전기 왕실 발원의 탑 봉안 불상 중 유일하게 명문과 발원문이 발견됐다고 알려졌다. 보물 제2013호인 ‘수종사 사리탑’은 정혜옹주의 사리탑으로, 왕실에 소속된 장인이 파견돼 설계 시공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보게 한다.

과거 한강이 수로(水路)로 이용된 만큼 도성에 드나드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수종사를 찾았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덕형(1561∼1613)은 매일 수종사에 올라 강 건너 묻힌 어머니의 무덤을 향해 인사드렸고, 이항복(1561∼1613)은 친구를 그리워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권력의 폭압과 암울한 시대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대안을 찾고자 수종사를 찾은 인물들도 많았다.

특히 조안면이 고향인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수종사는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명소요, 심신을 단련하고 고난을 이겨 내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정약용 선생은 ‘수종사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물이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낸다’는 글을 남길 만큼 수종사를 사랑했다.

수종사의 가을은 천금과도 바꾸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만나려고 오르는 길도 아름다움의 연속인데다, 산들바람이 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수백 년 모진 세월을 살아온 우리 선조들이 수종사를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소원을 빌었을지 생각하면 더욱 감동스럽다.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의 마음을, 누군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안부를, 시련이 닥쳤을 땐 이를 헤쳐 나갈 힘을 수종사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늘 선물했다.

남양주=조한재 기자 chj@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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