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원장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원장

얼마 전 우리 모두를 뿌듯하게 만든 두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피아노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 소식과 노벨상에 버금간다는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 이 두 사람의 선택과 집중에 관한 이야기다. 

임윤찬의 스승 손민수 교수, 그 윗 스승인 건반 위의 철학자라는 ‘러셀 셔먼’의 영향으로 ‘제임스 조이스’, ‘단테’의 글을 읽고 리포트를 쓰게 했다고 전해진다. 피아니스트의 자존감을 깎는 "손 재주만 부리는 기계가 될 거냐?!"라는 호통 속에.

헤르만 헤세와 윤동주, 릴케와 하이네, 법정스님의 책도 빠짐없이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임윤찬에게 고스란히 승계되고 이어지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과정에서의 태도, 선택과 집중으로 세상 사는 방법을 진지하게 스스로 묻고 답하며 자기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허준이 교수 역시 필즈상을 받은 뒤 어느 TV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문제는 잘 푸는데 학문적 성취도는 낮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학창시절 공부보다는 평가받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평균이라는 이름으로 우열이 갈라지는 사회문화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수 없이 빠르게 문제를 풀기보다는 자기 마음가는 대로 흥미를 가지고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힘이 중요하다고 했다. 선택과 집중의 힘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허준이 교수는 시 쓰기를 열망했고, 그만큼의 열망이 수학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도 현명함과 지혜를 더하지 않았나 싶다. 시라는 것은 결국 세상과의 소통이고,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표출하며 나와 너, 우리를 연대하는 일이다. 

ESG 경영 역시 연주나 수학 같이 악보와 공식은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체계와 패러다임을 갖춰 가며 사람을 하나로 묶어 가는 리더십 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사회지도층의 행동철학이 바탕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ESG 경영은 수도승이 자기 마음을 단련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본다. 전 세계가 팬데믹과 전쟁으로 공급망이 무너지고 미국의 금리 인상이 현실화되면서 ‘퍼펙트 스톰’이란 쓰나미가 몰려 오는 때, 이 용어는 더욱 간절한 보편성을 가지고 논의되기 시작했다. 기업을 경영하며 일반상식, 원칙, 시스템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현상에서 우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세 가지 가치만이라도 최소한 선택해 집중적으로 지켜 가자는 것이 ESG다. 기후변화에 대한 선제적이고 종합적인 대응, 나누고 배려하는 선의의 공동체 정신 함양, 공정함과 절차를 지켜 가는 정당한 거래, 경영문화를 다시 한번 재정비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영자에게만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할까? 물론 CEO나 대표로서의 리더십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역시 더 많은 실천이 요구되겠지만 같이 일하고 거래하는 주변의 모든 당사자, 고객, 조직구성원들의 내재화된 공감 역시 중요한 경영자산이 된다. ESG에 대한 개념을 공유하며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올바른 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라는 가치에 모두가 참여하자는 사회혁명적인 캐치프레이즈인 셈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분석자료를 보면 전 세계 5천932개 ESG 펀드 중 상위 20개 펀드에서, 그 중 17개 펀드가 이산화탄소를 다량으로 내뿜는 기업에 투자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환경친화 투자를 한다고 자본을 공여받아 실제로는 그린워싱을 했다는 것이다. 에너지 관련 기업 엑손과 아람코, 중국 석탄채굴회사 등이 거론됐다. 코카콜라의 해양 플라스틱 배출,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의 종이 빨대, 이케아의 불법 조달 목재 등이 논란거리로 이야기되는 중이다. 

피아니스트와 수학자에게 악보나 공식이 있듯이 기업 경영에는 법과 전략, 정책이 있다. 이 법과 전략,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함에 있어 겉으로 드러나는 책임과 의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범주나 틀을 지키면서 내면의 보이지 않는 통찰과 인문성으로 이 세상을 좀 더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 가자는 자율적 가치지향이 중요한 것이다. 공적인 영역과 법률적 차원에서의 규제가 스며드는 순간 ESG 경영은 또 다른 일탈과 편법만 제공하는 그린왁싱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민간 주도의 자율적 건강한 생태계가 필요하며, 그래서 ESG는 선택과 집중의 ‘자기책임원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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