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령 검단탑병원 과장
정예령 검단탑병원 과장

59세 김모 씨는 요즘 들어 등산을 하면 부쩍 숨이 차다. 같이 간 친구들이 열심히 산을 오를 때 혼자만 뒤처진다. 생각해 보니 최근에는 계단 2∼3층만 올라가도 힘겨웠던 듯싶다. 즐겨 하던 탁구와 배드민턴도 힘에 부쳐 예전만큼 즐기지 못한다.

"이게 다 나이 들어서 그렇지 뭐." 김 씨는 이런 생각을 하며 점심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간다. 현재 흡연주의자다.

혹여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끼는 분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COPD, 즉 만성폐쇄성폐질환일 가능성이 높다. 이야기를 더 이어가 보겠다.

어느 날 김 씨는 감기에 걸렸다. 예전처럼 감기약 좀 먹으면 낫겠지 하면서 지내는데 뭔가 숨이 더 찬 기분이다.

그런데 밤에 누우면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서 잠을 잘 도리가 없다.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진다. 잠에서 깬 아내가 등을 두드려 봐도 호흡곤란은 더 심해지고, 급기야 김 씨는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가게 됐다.

"만성폐쇄성폐질환입니다." 김 씨는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충격을 받았다. 이야기 속 김 씨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비슷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이란 뭘까? 잘 살펴보면 병명에 그 의미가 다 드러난다. 각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겠다.

만성(慢性)-병이 급하거나 심하지도 아니하면서 쉽게 낫지도 아니하는 성질. 폐쇄(閉鎖)-창자나 기도 같은 구조의 통로가 병적으로 막히는 일. 폐질환(肺疾患)-폐에 생기는 병. 즉, 만성적으로 기관지가 좁아지고 폐가 망가져 숨이 찬 병이다.

영어 줄임말로 COPD(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라고 한다. 기관지는 관 모양의 기관으로, 코나 입을 통해 들어온 공기는 기관지의 끝부분에서 좌우로 갈라져 수많은 분지를 내며 양 폐로 연결된 세기관지를 통해 각 폐포까지 전달되고, 폐포에서는 산소를 체내로 전달하는 기체 교환작용이 이뤄진다.

기관지나 폐 모두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중요 기관이다. 그렇다면 기관지가 좁아지는 이 병은 왜 생기게 될까? 원인은 대부분 흡연이다. 오랫동안 먼지나 유해가스를 흡입하면 질병을 일으키지만 흡연으로 인한 원인이 압도적이다.

담배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정한 1급 발암물질로, 담배 연기는 기도에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키면서 가래를 만들고 기도를 폐쇄시킨다. 평생 흡연을 하는 사람은 평생 기관지염을 달고 사는 셈이다. 흡연자들이 유독 가래를 많이 뱉는 이유다. 

또 흡연은 반복적으로 조직을 녹이는 효소를 방출하게 만들어 폐조직을 파괴한다.

파괴된 폐조직은 다시 생겨나지 않으며 원래 폐조직이 있던 부분은 공기로 대체된다. 쉽게 설명하면 폐에 구멍이 났다고 보면 된다. 폐CT를 찍어 보면 폐기종이란 소견으로 나타난다.

폐기종은 스폰지처럼 작은 구멍들로 시작해 진행할수록 크기와 범위가 점차 증가한다. 나중에는 10㎝가 넘는 큰 공기주머니가 여러 개 생기기도 한다. 이것은 그만큼의 폐조직이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COPD 초기에는 소기도부터 먼저 좁아지기 시작한다. 이후 광범위하게 진행되기까지 만성적으로 조금씩 진행되는 병의 특성 때문에 COPD 환자들은 병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저 나이 탓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된다. 

하지만 병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한다. 이미 호흡곤란을 느낀 뒤에는 병이 꽤 진행된 경우가 많다. 폐기능 검사를 해 보면 같은 나이대의 비흡연자에 비해 폐활량이 감소된 사실이 확인된다. 여기서 흡연을 지속하면 숨을 쉴 때마다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점차 말하거나 걷는 행위조차 힘들어진다.

흡연자들은 예전보다 숨이 차다고 느껴진다면 병원에 들러 검사를 받아 보길 권한다. 각종 검사를 통해 COPD로 인한 기도폐쇄가 확인되면 염증반응을 낮추고 기도를 확장시키는 약을 처방한다.

지금까지 글을 읽었다면 아시겠지만, 금연은 필수다. 금연이야말로 COPD의 진행을 멈출 중요한 치료이기 때문이다.

흡연자들이여, 이제 담배를 끊을 때가 됐다. 겉으로는 당신을 위로해 주는 척하며 몰래 당신을 파괴하는 유해한 친구를 떠나 보내자.

100세 시대, 앞으로 남은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건강하고 활기찬 당신의 인생을 응원하겠다.

<정예령 검단탑병원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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