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강대국과 핵을 앞세운 북한의 위협 등이 상존하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외교와 협상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부여된다.

 특히 최근 러시아가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가 위험에 노출돼 그 어느 때보다도 ‘외교’와 ‘협상’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러한 시대적 관심이 모아질 때면 이천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한반도를 대표하는 외교의 달인인 장위공 서희 선생의 외교적 협상력이 절실하다.

 거란족을 상대한 외교 전략으로 유명한 서희. 그는 어떤 생을 살았는지, 이천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함께하는 장위공 서희 선생을 이천시 부발읍 효양산 기슭에 위치한 서희역사관에서 만나보자.

# 홀로 적장과의 협상으로 거란을 물리치고 땅을 되찾다

 993년. 거란 소손녕은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 봉산에서 크게 진 고려 조정은 소손녕의 군세가 80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까지 받고, 항복을 해야 하는지 논할 만큼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당시 중군사를 맡았던 서희는 소손녕의 군세가 정녕 80만 명이라면 당연히 보급에 문제가 있으리라 판단했다. 게다가 소손녕은 즉시 항복하라고 외치기만 할 뿐, 80만 명이라는 숫자에 비해 공세가 소극적이었다.

 이에 당시 왕인 성종에게 의견을 전했고, 서희는 단신으로 소손녕과 담판을 벌이게 된다. 대한민국 초등교육을 받은 이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배웠을, 서희의 외교담판 일화다.

 서희는 옛 고구려 땅이 거란의 소유라며 쳐들어온 소손녕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고려가 고구려의 후손임을 설득해 거란의 대군을 철수시켰다.

 게다가 우리나라 영토를 압록강 이남까지 확장시켰다. 거란의 80만 대군에 맞선 단 한 사람의 외교관, 서희 선생이 있었기에 영토 상실의 위기가 영토 확장의 기회로 전환됐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외교 전략가로 평가 받는 이유다.

 하지만 사실 서희는 ‘외교관’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여요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포석’ 을 마련했고, 당시 고려의 국정 설계자이자 전략가로도 뛰어난 인물이다.

 이처럼 빼어난 인물인 서희의 본관이 바로 이천이다. ‘이섭대천’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천이라는 지명도 서희 선생과 연관이 깊다. 서희역사관은 ‘이섭대천’의 뜻을 기리고 지역의 인물이자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인 서희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자 시민들과 공유하는 공간으로 지난 2016년 문을 열었다.

 서희역사관은 1층에 전시관과 영상관이 있으며, 2층은 추모관으로 운영된다. 역사관 건물 밖에는 ‘서희 역사 산책로’를 조성해 전체 공간이 서희라는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보고 듣는 복합문화의 장으로 만들었다. 특히 서희 역사 산책로에는 장위공 서희의 일대기를 30여 점의 조각 작품으로 꾸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 서희역사관과 이천의 역사

 1층 전시관에는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라 할 만한 장위공 서희의 「고려사」기록 부분을 복제해 전시하는데, 해당 부분에는 "서희(徐熙)는 어릴 때 자가 염윤(廉允)으로, 내의령(內議令) 서필(徐弼)의 아들이다. 성품이 엄정하고 조심스러웠다"고 기록됐다. 또 "15년(996)에 서희가 병이 들어 개국사(開國寺)에서 요양하자, 성종이 직접 가서 문병하고 어의(御衣) 한 벌과 말 세 필을 사원에 나눠 시주했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미뤄 왕까지 그의 건강을 걱정할 만큼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알 만하다.전시관의 다른 공간에는 이천의 지명유래와 서희의 연관성을 이야기한 부분도 있는데,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이 ‘이천’이라는 지역 명을 내리게 된 사연에서 기인한다. 이천 지역은 원래 ‘남천’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왕건이 후백제와 전쟁을 치르려고 남쪽으로 내려가던 중 복하천에 이르렀을 때, 홍수로 인해 내를 건너지 못하게 되자 당시 남천 지역의 호족이었던 ‘서목’이 물길을 인도해 왕건 일행이 모두 무사히 복하천을 건넜다고 한다.

 이에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뒤 서목의 공을 높이 여겨 마을에 ‘이섭대천-큰 강을 건너면 이롭다’의 의미를 함축한 ‘이천’이라는 지명을 내렸다. 그런데 바로 그 서목이 서희의 아버지인 서필의 사촌이다. 이처럼 이천은 서희와 떼려야 떼지 못하는 역사적 관계를 맺었다.

 역사관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감사 편지를 쓸 만한 공간이 있으며, 한편에는 포토존이 마련돼 사진 인화까지 해준다. 또 옆에는 장군 옷을 입어 보는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장군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나중에 좋은 기억과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2009년 외교통상부는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 1호’로 장위공 서희를 선정했다. 서희 선생처럼 훌륭한 외교관이 된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진을 촬영해도 그만이다. 촬영된 사진은 미래의 외교관 임명장 코너에서도 확인 가능하며 들어오는 입구에서 인화해도 좋다.

 영상관에는 서희 선생의 탄생부터 충신으로 성장한 과정, 협상가로서 그의 면모를 살펴보는 10분 정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나게 돼 어린이들에게 교육적인 효과가 높다. 

 또 ‘서희의 위대한 담판’이라는 퀴즈를 맞추는 공간도 마련됐다. 퀴즈를 6개 이상 맞추면 작은 선물도 받는다. 조형물과 영상관, 전시관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테스트 할 기회도 된다. 

 

 # 30여 점의 조각 작품으로 조성한 서희역사산책로

 서희역사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모습이 장위공 서희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조각 작품들이다. 역사해설사와 함께 설명을 들으면서 서희 선생의 일대기와 업적을 돌아보는 일도 추천할 만하고, 해설가의 설명이 어렵다면 작품 아래 설명글을 읽기만 해도 역사를 한눈에 보게 된다.

 이천 서씨의 시조인 서신일 선생의 전설이 담긴 효양산 사슴이야기와 이천이라는 지명이 유래가 된 서목과 서희의 아버지인 서필 선생의 업적, 서희 선생의 탄생과 성장 과정이 조각 작품으로 표현됐다.

 또 과거시험과 벽란도에서 외국 상인을 만나는 모습, 송나라에 사진으로 간 서희, 긴박한 국제정세에 고뇌하는 서희 선생 등의 모습이 담겼다.

 특히 거란의 침입에 따른 고려조정의 분열과 소손녕과의 역사적인 담판 등 서희 선생의 업적과 역사적인 의미를 담은 30여점 의 조각 작품이 역사산책로에 위치해 아이들과 산책하면서 역사를 배우도록 구성됐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이유, 세계사적 흐름에 따라 군사적·경제적 강국에 둘러싸여 늘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서희의 탁월한 지략, 결단력,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외교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이 글로벌 시대에 이천의 자랑스런 인물인 서희 선생의 행적을 살피고 그가 행하고자 한 ‘의’와 ‘실리’를 배워보자.

 서희역사관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에 꼭 필요한 ‘충절’과 ‘협상’의 가치를 확인해 주는 역사적인 상징 공간으로 역할을 다하리라 기대된다.

 

 # 장위공 서희문화제

 이천시는 외교 협상가로서 장위공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서희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알리고자 서희 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역사 문화 축제를 연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글로벌 축제를 지향하며, 우리나라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 상황에 주목해 평화적 소통과 교류에 대한 방법을 찾아보고, ‘외교, 평화, 역사’를 테마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22 찾아가는 서희’ 교육 프로그램을 4월부터 11월까지 진행중이다. 관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서희 선생의 일대기와 외교적 리더십에 관한 역할극, 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꿈을 키우며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미래 사회를 이끄는 리더로서의 성장하도록 한다.

 또 9월에 개최되는 ‘장위공 서희 문화제’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안전하게 즐길 만한 지속 가능한 모델을 제시하며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사전 예약제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을 대상으로 장위공 서희 선생의 얼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전국미술대회’, 그리고 10월에는 서희 선생 서거 제1024주기 추모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천=신용백 기자 syb@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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