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피신처 동굴입구에 그려진 태극기(왼쪽).북간도 명동촌을 개척한 규암 김약연 선생
독립군 피신처 동굴입구에 그려진 태극기(왼쪽).북간도 명동촌을 개척한 규암 김약연 선생

‘대한 독립전쟁 그 현장을 가다’ 특별사진 기획전이 광복절 75주년을 맞아 부천역 북부 마루광장에서 열린다.

8일부터 오는 12일까지 열리는 사진전은 ‘봉오동 전투’, ‘청산리전투 승전’ 및 ‘간도 대 참변 102주년’을 맞아 민주평화통일자문회 부천시협의회가 주최하고 부천시와 이북 5도 위원회, 규암 김약연 기념사업회가 후원한다.

특별사진 기획전은 102년 전 북간도의 항일 무장독립투쟁의 흐름을 의미 있게 보여주며 봉오동, 청산리전투에서 참패한 일본군이 그 보복으로 한인을 집단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간도참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는 북간도 근대문화의 발상지이자 항일독립운동 기지 역할을 했던 북간도 명동촌을 개척한 규암 김약연 선생의 증손자 김재홍 전 함경북도지사의 사진 제공으로 이뤄졌다.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된다.

제1부 ‘북간도에 세운 이상향 명동촌과 용정’에서는 함경도에 본적을 둔 김약연 등 4가문 142명이 1899년에 개척하기 시작한 명동촌과 용정촌의 옛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대조하며 보여준다.

은진학교 교정에서 기념촬영을 한 규암 김약연 선생과 여운형 선생(왼쪽). 봉오동 전투로 활약한 홍범도 장군.
은진학교 교정에서 기념촬영을 한 규암 김약연 선생과 여운형 선생(왼쪽). 봉오동 전투로 활약한 홍범도 장군.

제2부 ‘항일민족의식 함양 북간도 민족학교’에서는 서전서숙(1906)을 비롯해 명동학교(1908), 정동학교(1908) 등 항일민족의식을 교육하는 학교와 일본인 주도 광명회가 세운 광명학교도 함께 소개해 당시 용정의 교육 상황을 비교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최초로 제작한 1920년도 ‘대한민력’을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한다.

제3부 ‘북간도 항일무장조직 철혈광복단’에서는 북간도에서 한인의 자치와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비밀결사와 같은 조직을 소개했다. 1907년의 교민회, 1909년의 ‘간민교육회’, 1913년의 ‘간민회’, 1919년의 ‘간도국민회(대한국민회)’ 등의 발전과정을 전시한다.

제4부 ‘항일무장독립운동과 봉오동전투’에서는 봉오동전투 전적지와 홍범도 장군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실제 현장의 사진과 작전상황도 등으로 봉오동 전투의 의미와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보여주는 사진으로 구성했다.

청산리전투에서는 서간도의 서로군정서와 북로군정서의 발원인 경학사 터와 경학사의 정신을 이은 부민단 신흥무관학교 터, 청산리전투의 첫 번째 전투인 백운평의 직소전적지 현장, 두 번째 전투현장인 천수평전적지, 최후 최대전적지인 어령촌전투가 최초로 공개된다

제5부 ‘간도참변과 일제의 한인 탄압’에서는 봉오동전투가 직접적 원인이 된 ‘간도참변(1920)’을 조명했다. 일제는 항일독립투쟁을 원천을 제거하고자 훈춘일본영사분관의 습격사건 조작해 대대적인 간도토벌대를 투입해 북간도의 한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간도토벌대의 주역인 나남19사단과 예사 보병제75연대의 병영과 훈련 모습, 일본수비대 병영을 사진으로 전시한다.

부천=최두환 기자 cdh9799@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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