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여권’이란 해외에서 우리나라 국민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신분증으로,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의 신분이나 국적을 증명하고 여행국에 보호를 요청하는 증서다. 고대부터 국가, 교회 등 권력은 관문과 검문소를 설치해 이동하는 사람들을 단속하고 통행허가서, 여행허가서를 발급했다. 그러나 대개의 국가들은 출입국 심사 없이 국경을 건널 수 있었기 때문에 여행증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해외에 나갈 경우는 사절단 또는 상인으로만 제한했고,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벗어나는 것조차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조선이 개항하면서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국외로 나가는 내국인에 대해 출입국 허가증에 해당하는 공적인 문서가 필요하게 됐다.

조선 정부는 개항 후인 1880년대부터 허가서, 증명서로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빙표(憑標)와 집조(執照)를 해외로 출입하는 자국민들에게 발급했다. 빙표란 본래 증명서나 어음, 수표 등으로 각 항구의 감리서에서 해외로 도항하려는 조선인에게 발급하고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았다. 집조 역시 증명서로 내지통행증, 지계 및 납세증명서 등 다양하게 사용되던 양식이었다. 그러다가 개항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맞춰 이전부터 사용됐던 집조와 빙표를 여행허가서 혹은 증명서로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각 개항장 감리서의 감리가 증명서 발급 업무를 관장했다. 

1892년 5월 당시 집조와 빙표로 나눠져 있던 여행허가서는 집조로 통일됐는데, 그간 관용적으로 집조라고 불렀던 것에서 ‘집조’는 이제부터 ‘여권’을 의미하게 됐고, 해외여권제도로서 정착하게 됐다. 그리고 1895년 을미개혁 이후에는 해외로 도항하려는 조선인에게만 집조를 발급하도록 규정을 바꾸면서 해외로 나가는 관리나 유학생들은 관련 부서를 통해 오늘날 외무부에 해당하는 외부(外部)에 집조를 요청했고, 상민(商民)들은 감리서에 집조 발급을 신청했다. 반면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은 여권이 필요치 않았다. 일본은 일본인의 한국 내 자유여행을 위해 한국인에게도 여권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1902년 11월 대한제국 정부는 하와이 이민을 위한 임시기구로 궁내부에 ‘유민원’을 설치했다. 여권에 대한 중앙 통제 강화와 경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 공사 알렌의 제안에 따라 일본의 모델을 기초로 한 이민 기구를 창설한 것이다. 그리고 유민원은 외부(外部)를 대신해 집조라는 용어 대신 여권과 동일한 ‘여행권’ 발급 업무를 담당하게 했으나, 여행권 발급 권한을 둘러싸고 유민원과 외부가 상호 심각한 갈등과 대립을 초래했다. 결국 1903년 5월부터 유민원이 유명무실화되면서 외부가 다시 ‘집조’ 발급을 담당하게 됐다. 그러나 인천항 감리는 외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이민회사에 집조를 발급했고, 하와이 이민회사인 동서개발회사 역시 자체적으로 집조를 발급하기도 했다. 하와이 쪽에서는 이민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지 유무만을 판단하고 이민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05년 4월 멕시코 이민 회사인 대륙식민합자회사 역시 마찬가지로 집조제도의 규정을 무시하고 한국인들을 모집해 이민시켰고, 이민이 금지된 이후에도 감리서와 결탁해 집조를 발급받았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는 집조 발급 권한까지 이양을 요구했고, 마침내 1906년 9월 통감부령으로 ‘한국인 외국 여권 규칙’을 고시함에 따라 일제의 통감과 이사관이 한국인들에게 ‘여권’을 발급하게 했다. 이로써 집조제도는 결국 통감부 여권제도가 공포되면서 폐지되고 집조라는 용어마저 빼앗기게 됐다. 일제는 새로 정한 여권 법령에 따라 한국인들이 국경을 통과하는 절차에 엄격한 통제를 가할 수 있었다. 100원 이상 노비(路費)를 휴대함을 불허했고, 조국 독립과 국권 수호를 위해 국외로 망명하는지의 여부도 철저히 검문했다. 여권이 오히려 외부 세계와 교통을 통제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됐던 것이다. 오늘날 사용되는 여권(旅券)이라는 용어가 1878년 일제가 만든 것이라 하니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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