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 뒤에는 늘 조연이 무대를 받쳐 준다. 조연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다시 세간의 화제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꿈꾸는 조연이 존재한다.

윤동배(57·사진)청운대 감독이 그런 조연 같은 주연이다. 선수로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서의 준비는 갖췄다. 이력만 봐도 ‘완벽투’다. 윤 감독의 선수생활은 외야수로 시작했다. 고교와 대학에서의 뛰어난 활약은 프로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의 눈에 띄었다. 1989년 롯데 2차 3순위 지명이다.

하지만 당시 롯데의 야수진은 접하기가 어려운 ‘넘사벽’들이 버텼다. 유두열·장효조 등 쟁쟁한 외야수에 2군을 전전했던 윤 감독이다. 야구 포기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손에 쥐어진 역할이 투수다. 타자가 투수로 바뀐 셈이다. 야구는 공격수가 수비수를 넘나드는 다른 구기종목과 다르기 때문에 프로 선수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런데 바뀐 역할이 윤 감독에게도 안성맞춤이다. 2군에서 투수 연습을 하다 바로 1군으로 호출되면서 첫 경기부터 1승을 올리며 주목받았다. 상대팀은 당시만 해도 최강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해태 타이거즈(현 KIA)이다.

윤 감독은 선수보다는 후배 양성에 뛰어난 소질을 가졌다는 평가다. 그래서 롯데에서 스카우트와 육성팀장을 지내기도 했다. 윤 감독의 유명한 일화는 바로 동생 형배(54)씨에게서 나온다. 형 동배 씨와 동생 형배 씨는 1990년 초 롯데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었으며, 학창시절 역시 부산 남일초-대신중-경남고에서 보냈다. 프로에 입단하기 전까지 타자였던 형제는 프로에서 나란히 투수로 전향한 이력까지 같다.

윤 감독은 대학을 졸업한 동생이 둥지 틀 곳이 없자 롯데 연습생으로 끌어들인다. 1991년 연습생으로 입단한 동생은 이듬해 8승을 따내고, 그해 한국시리즈 2차전 선발로 나서 승리투수가 된다. 흔하지도 않은 롯데의 두 번째 우승에 힘을 보탰다. 1993년에는 14승을 따내 팀 내 최다승 투수가 되기도 했다. 형배 씨는 1999년 은퇴할 때까지 29승27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4.08을 기록했다. 형이 자질을 알아보고 권유한 선수생활에서 동생이 보기 좋게 응답한 셈이다. 반면 형 동배 씨는 프로생활 동안 부상 등에 시달리면서 통산 8승9패, 평균자책점 5.96을 기록한다.

롯데에는 윤 감독이 스카우트 시절 영입한 인재들이 많다. 이대호(롯데), 송승준(은퇴), 강민호(삼성), 전준우(롯데), 손아섭(NC), 장원준(두산)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롯데 출신 스타들이다. 윤 감독의 손을 거쳐 간 이들은 롯데 자이언츠 연고인 부산에서는 ‘길 가다가 절 받는’ 대스타가 됐다.

윤 감독의 시선은 이제 대학 야구부 후진 양성에 맞춰졌다. 창단팀이니까 나중에 성적을 내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꿈에도 없다. 선발한 선수들을 잘 다듬어 옥석으로 만드는 일에 심혈을 기울일 태세다. 그리고 청운대가 야구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하도록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포부다.

윤 감독은 "대학 선수들은 2년제 드래프트 외에도 얼리드래프트(2+1년제) 등 다양한 프로 지망이 가능해졌다"며 "우리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안재균 기자 a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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