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채무 감면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멈추질 않는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약 30조 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통해 연체 90일 이상 차주에게 60~90% 수준의 원금 감면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은행권에선 "과도한 원금 감면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며 "감면율을 10~50%로 낮추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가뜩이나 다수 국민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데, 기존보다 더 원금 감면을 축소하겠다는 은행권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리 있는 얘기다. 정부안에 따르면 소득이나 재산의 여유가 있는 차주는 감면 받지 못한다. 담보채무의 경우 연체 90일이 넘어도 원금 감면이 없다. 60~80% 수준의 원금 감면은 보유 재산을 초과한 부채분에 적용되고, 90% 원금 감면도 기초수급자, 중증장애인, 70세 이상 고령자 등 사실상 원금 상환 여력이 없는 취약계층에게만 적용된다. 신용회복위원회 채무 조정과 개인회생제도의 평균 감면율이 각각 44~61%, 60~66% 수준임을 감안하면 과도한 포퓰리즘으로 몰아가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채무 탕감은 열심히 자신의 빚을 갚아 나가는 대다수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형평성에 어긋나고, 사회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문제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면 무상복지 제도는 아예 존립할 근거가 사라진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현 국가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제도의 실패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상적인 일로, 이를 수정·보완해 가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 실패를 보완하는 대표적인 예가 경제적 자력을 지원하는 새출발기금이다.

단, 고수돼야 할 원칙은 있다. 자활 성과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사회보장제 적용 대상으로 전락하는 이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국가재정에도 기여하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자력으로는 벗어나기 힘든 악순환 구조에 갇힐 때가 있다. 이럴 땐 자립하도록 도움을 주는 게 국가적으로 더 큰 이익이 돼 돌아온다. 그것이 채무 감면의 본질이다. 오늘(18일) 금융위가 발표할 예정인 새출발기금 세부계획에는 이런 원칙이 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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