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누구나 함께 있으면 편안해지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되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듣는 것보다 말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몇 사람이 모여 회식을 하면 처음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만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따로 놉니다. 누구나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더욱 친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고,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지요.

요즘은 어디를 가도 시끄럽습니다. 뉴스만 봐도 앵커의 말뿐만 아니라 화면 아래에 쉬지 않고 지나가는 뉴스 제목들로 인해 같은 화면에서도 서로 다른 뉴스 주제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산만한 세상에서는 잠시라도 침묵할 수 있는 곳이 현대인들에게는 필요한가 봅니다. 「좋은 생각」(2018년 6월호)에 따르면 영국의 어느 백화점은 한편에 ‘침묵의 방’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손님들이 소란스러운 매장에서 잠시 벗어나 재충전할 수 있게 한 것이지요. 그곳에 들어가려면 휴대전화도 두고 가야 한답니다.

남이 말하는 동안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그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미리 판단하고 그의 말을 끊는다는 점입니다. 「예화로 푸는 공감 교수법」(차갑부 저)에 미국의 어느 쇼 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학생을 인터뷰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앵커가 "커서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묻자 아이는 "조종사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앵커는 "만일 네가 몰고 있는 비행기가 태평양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는데 그때 마침 비행기 연료가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승객들에게 안전띠를 단단히 매라고 말한 뒤에 저는 낙하산을 타고 밖으로 나갈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스튜디오 안에 있던 방청객들 모두 웅성거렸습니다. 그 중에는 "아휴, 저런 나쁜 녀석 같으니!"란 말도 들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당황한 앵커가 아이를 달래 주려고 "얘야, 왜 그렇게 하려고 했니?"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료를 구해야 하니까요."

만약 방청객들이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었더라면 아이의 의도가 실현 가능성은 없어도 참으로 선하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남의 말을 미리 판단하고 결론까지 내는 데 익숙합니다. 이것이 듣는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고 결국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에게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말하는 시간의 두 배를 들어주라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큰일을 당해서 좌절하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입장이나 자신의 힘겨운 감정을 들어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쉽게 "힘내!"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을 쉽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이 그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사이토 시게타 저)에 따르면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친구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면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마. 그럴 수가 없어서 지금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 거잖아.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고 그냥 나를 내버려 둬!"

그를 격려하겠다고 던진 말이 친구의 감정을 오히려 상하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그랬구나. 여러 가지로 힘들었겠구나. 네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어"라며 들어주는 게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을 채워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좋을 때는 행복을 느끼고, 관계가 틀어질 때는 불행을 맛봅니다. 관계가 좋아지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들어주는 지혜가 필요할 듯합니다. 그래야 함께 있으면 편안해지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이런 관계가 행복한 관계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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