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따사로운 가을 햇살과 브람스 음악의 짙은 현의 음색은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기에 고독감과 쓸쓸함을 더해 준다. 가을에는 왜 브람스 음악을 그렇게 많이 연주하는 걸까? 스승의 아내를 남몰래 사랑했고, 이뤄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평생 해바라기같이 한 여인을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하고, 스승 사후에도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보호했던 자신의 내면적 사랑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브람스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인가?

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했던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은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다. 슈만의 어머니는 법학도가 되기를 원해 라이프치히로 유학을 보냈지만 음악에 빠진 슈만은 라이프치히의 유명한 피아노 교육자인 프리드리히 비크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비크의 집에는 피아노 신동으로 불리는 9세 어린 딸이 있었는데, 바로 그의 아내가 되는 클라라였다. 

그들은 스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렬히 사랑하게 되고, 클라라가 18세가 되자 비크의 집요하고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법정 투쟁 끝에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예술가로서의 압박감이 그를 정서적으로 피폐하게 만들며 이전부터 조금씩 엿보이던 우울증은 환청, 환각 등의 정신분열증으로 악화됐다. 

이때 슈만과 클라라 앞에 클라라보다 14세 연하인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가 나타나 슈만의 제자가 돼 브람스의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클라라가 힘들게 생계를 꾸려 가는 것을 본 브람스는 가족의 일원인 듯 슈만 가족을 성심성의껏 돌봤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꿈에 그리던 여성상이었고, 자신의 작품을 가장 완벽하게 해석하고 연주해 주는 거장으로, 어느새 클라라에게 사랑에 빠져 편지를 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사용해 당신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클라라는 브람스의 사랑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슈만의 아내로 살길 원했고,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죽은 후 슈만과 브람스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브람스는 그의 스승인 슈만의 죽음으로 클라라 슈만과 그의 가족의 후견인이 됐고, 클라라의 연주 여행 등을 동행하며 평생 믿음직한 친구이자 음악적 동지로서 아꼈다. 브람스는 클라라에 대한 사랑, 존경심과 얽힌 마음을 가슴속에 간직했다. 

후에 클라라가 위독하다는 비보를 접하고 40시간 동안 달려왔지만 결국 임종을 지키지 못한 브람스는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 비통해했다. 그러고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가장 위대했던 가치였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탄식했다.

1896년 5월 20일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뒤 브람스의 건강도 눈에 띄게 쇠약해졌고, 결국 이듬해 4월 브람스도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의 음악은 애조적이며 격정보다는 절제를 앞세워 극적인 음악이 아닌 시적인 음악으로 정제됐다. 

브람스가 가장 사랑한 교향곡 제4번은 브람스 특유의 짙은 우수와 고독에 찬 아름다운 선율이 작품 전반에 깃든 작품이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브람스 만년의 고독한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브람스 음악이 많은 사람에게 고독함과 쓸쓸함의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그의 음악이 모든 인간의 삶 속에 내재한 고독과 쓸쓸함의 감수성을 파고들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가을에는 진한 커피와 함께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을 들으며 쓸쓸하지만 로맨틱한 선율로 텅 빈 마음을 채우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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