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삼국지 시대인 중국 후한 말기에 예주 여남땅에 ‘허소’와 ‘허정’이라는 두 사람은 그 고장에서 인물을 평가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 평이 시류에 따라 적절히 바뀌었으며, 또 매월 초하루에 발표됨으로써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월단평(月旦評)’이라고 한다. 요즈음은 조직에서 핵심성과지표(KPI), 성과보고서, 금융권의 감정평가 같은 용어가 익숙하지만 한때 잡지나 신문에 이 용어가 인물평을 대신하는 말로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특히 조조에게 태평시대엔 간웅이요, 난세엔 영웅이라고 평한 일은 유명하다.

사회생활 자체가 평가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고, 자신도 남을 평가한다는 메커니즘은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다. 그 근거로 사회적 상호작용은 대상자를 인지하는 데서부터 내세울 수 있다. 흔히 ‘대인적 인지(對人的 認知)’라는 말로 평가되는 이 개념은 조직이나 개인의 유효성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예가 크기 때문에 그 정확성이나 수준, 범위는 주변 모두에게 관심사항이 된다. 역학적으로는 힘을 나타내고 선의 또는 악의의 영향력을 전할 수 있으며, 정서적으로는 동류의식과 동조, 배척, 소외 같은 감정선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고정관념이나 편견, 선제적이고 의도적인 부분평가, 한 가지 특징만을 강하게 파고드는 현혹 효과 등 평가라는 도구를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입장에서는 평가받는 사람보다 몇 배나 더 진중하고 정확하며 투명한 절차적 정당성을 보여야 한다. 조직의 효율성은 어차피 우리가 우리 모두를 평가하는 상황에서 제고되기 때문이고, 평가를 받는 사람의 입장은 의식의 흐름 자체가 날카롭고 관대해지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평가는 어려워야 하고 무거워야 한다.

ESG에 대한 최종적 가치가 ‘평가등급’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운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징후들이 여러 곳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난다.

미국 여러 주정부에서는 ESG 관련 투자의 부적격성을 따져 가며 석탄 등 화석연료 산업투자를 줄여 간다는 이유로 거래 정지나 자금 회수를 시도하고, 언론사들은 "ESG 평가시스템에 대한 혼란부터 정리하라"고 충고한다. 더 심각한 것은 기관마다 항목과 지표가중치에 대해 견해가 다르고, 그래서 같은 기업에 대한 평가회사의 결과가 완전히 엇갈리는 것에 대한 시류적·현상적 차이 문제다. 표준화되지 않은 평가항목을 억지로 끼워 맞춰 합산혼란(aggregate confusion)을 야기한다면 친환경 기업을 흉내나 내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평가나 항목, 등급, 가중치, 표준화 문항 등은 결국 기업과 CEO, 직원, 관계 구성자 등등의 자발성과 자기주도성이 핵심이 된다. 따라서 평가를 받기 위한 보고서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우선 고려할 사안은 다음 세 가지로 방향을 잡는다. ▶실용적 자산으로서 ‘지속가능경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보고서가 될 것인지 ▶주변 사업 관계 당사자들에게 합리적 기준의 평판자산을 확보하게 될 것인지 ▶보고서 내용이 미래 가치를 담아 성장·발전을 기대하게끔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우선 항목에 미리 맞춰 보고서 내용을 작성한다면 자발성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서 내용을 꾸며야 개선과 차이의 접점이 보이고 실제 실적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실효성, 실질성이 떨어지면 그만큼 다른 곳에서 누수와 낭비가 있게 된다. 다음 주변에서의 평판 역시 보이지 않는 자산으로서 신뢰나 공감성에 대한 자기 증명으로 이어져야 한다. 투자만을 위한 기준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자리매김이 사회적·경제적 평판가치로 남는 것이다. 미래가치 역시 보고서를 빛나게 하는 요소로 자리잡을 수 있다. 지금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 ESG 자산의 핵심 가치다. 

ESG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대두하기 시작한 즈음 적어도 ESG 기반 평가와 보고서, 인식과 행동의 시스템적 변화는 자발성과 자기주도성이 근간이 돼야 한다. 기업의 자발성에 의구심을 보내며 평가점수와 등급으로 공공서비스라 포장해 접근하게 되면 ESG로 가는 세상바뀜은 요원하다. 어쨌든 평가는 기업들의 자발적 선한 가치를 바탕으로 긍정의 영향력을 기대하고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조장하는 합리적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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