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푸르나 작가가 15일 인천시 중구 작업실에서 인천의 상징적인 장소·분위기 등을 칵테일로 표현하는 리퀴드랩999 작업을 하고 있다.
김푸르나 작가가 15일 인천시 중구 작업실에서 인천의 상징적인 장소·분위기 등을 칵테일로 표현하는 리퀴드랩999 작업을 하고 있다.

"제가 살고, 생활하고, 먹고, 놀던 곳이 재개발이 되고 없어지는 모습을 보며 아쉬운 생각이 들었어요. 인천이 워낙 빨리 개발되는 도시 중 하나잖아요. 시각예술 작가로서 사라지는 곳들을 알리면 좋겠다 싶었죠. 사람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전달하는 동시에 잊혀진 곳을 찾도록 만드는 일이 제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천의 대표 원도심인 중구 개항장 거리에 사라지는 가치들을 시각예술로 담아내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인천문화재단 점점점 사업으로 조성된 ‘아트랩999’는 인천의 오래된 극장과 연계해 지역 문화예술 활성을 고민하는 곳이다. 다양한 시각자료와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상품으로 사라지는 공간이 갖는 가치와 지속성을 전한다.

아트랩999에서 만난 김푸르나(35)대표는 2016년 동구 미림극장과 만남을 계기로 잊혀져 가는 인천의 공간들에 관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 지원으로 미림극장을 찾은 그는 2018년까지 3년간 극장을 활용하거나 개선하고, 영화제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북성포구를 표현한 리퀴드랩999 칵테일.
북성포구를 표현한 리퀴드랩999 칵테일.

 김 작가는 "무분별하게 없어지는 장소나 문화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생각해요. 너무 새로운 일만 찾지 말고 지금까지의 문화와 함께 상생할 방법을 생각해 보면 안 될까요. 그런 고민을 하면서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을 찾게 됐어요. 제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시각예술로 자연스럽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프로젝트에 사라져 가는 무언가를 계속 넣게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미림극장, 요코하마 지역극장과 교류는 아트랩999의 모티브가 됐다. 청년들이 인근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다문화가 공존하는 요코하마는 왠지 인천의 미래를 보는 듯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지역 극장을 시민운동으로 살려내는 모습은 위기에 빠진 인천 단관 극장과 겹쳤다.

 김 작가는 "요코하마에서 만난 작가 2명이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면서 지역 극장과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봤어요. 우리가 인천에서도 이런 공간을 만들어 상생할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싶었죠. 그걸 계기로 점점점 사업에 기획서를 냈고, 2020년부터 지금까지 아트랩999를 운영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아트랩999에서는 지난 6월부터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 ‘리퀴드랩999’가 한창이다. 이 프로젝트는 인천의 사라지는 공간이나 인천 하면 떠오르는 상징들을 칵테일 작품으로 표현했다. ‘북성포구’, ‘맥아더’, ‘디스코팡팡’, ‘미림극장’ 같은 칵테일 이름부터 인천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김푸르나 작가가 만든 리퀴드랩999 작업물 중 한 작품. 이것은 월미도와 인천상륙작전, 맥아더 등을 이미지로 연상시켜 만들었다.
김푸르나 작가가 만든 리퀴드랩999 작업물 중 한 작품. 이것은 월미도와 인천상륙작전, 맥아더 등을 이미지로 연상시켜 만들었다.

 이날 김 작가가 선보인 칵테일 ‘북성포구’는 인천 바다의 맛을 담은 칵테일을 위해 북성포구를 연상하는 그물, 건어물, 조개, 부표, 그 밖의 안주를 장식했다. 맛보기 전부터 "재밌다"는 말이 먼저 나왔지만, 칵테일 잔에 붙은 글귀를 보니 단맛 뒤에 오는 칵테일의 쓴맛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칵테일 잔에는 ‘인천 해안에서 하나뿐인 갯벌포구였던 북성포구는 2018년 인천시에서 공유수면을 메워 해양친수공간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는 글귀와 함께 사라진 북성포구의 모습이 담겼다. 밝고 재미있는 이미지에 어두운 이면을 함께 담아내는 일이 그의 표현 방식이다.

 김 작가는 "제 작업은 처음부터 굉장히 유머러스했어요. 대학에 다닐 때 젠더에 관심이 많아서 여성의 몸에 남성의 얼굴을 합성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했죠. 저는 진지하게 작업했는데 시민들은 작품을 재밌어 하셨어요. 그걸 보면서 역으로 이걸 잘 이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젝트할 때도 상당히 유머러스하게 다가가지만, 실제로는 보여 주고 싶은 부분을 좀 감춰서 전달하려는 성향이라고나 할까요"라고 작품 취지를 말했다.

 그의 작품과 프로젝트에서 ‘재미’는 보는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지원을 받아 전시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일 중 하나는 시민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재단의 지원을 받고 세금으로 전시를 했는데 시민들이 안 오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시민과 함께하는 워크숍에서도 작품을 어렵다고 느끼신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설명이 가능할까 고민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3년간 공간을 운영하면서 그는 독립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내년에 이 프로젝트가 끝나더라도 인천에서 시각예술을 보는 공간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앞선 프로젝트에서 그랬듯 다른 분야 예술인들과 함께 여러 갈래로 시각예술 작업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지속가능성이다.

 김 작가는 "리퀴드랩999는 프로젝트가 수입까지 이어지는지 확인하는 실험입니다. 그 실험을 통해 시민들이 공간을 찾고, 판매와 소비가 되는지 확인하죠. 저는 요즘 문화예술을 지나치게 무료로 남발하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해요. 문화예술을 돈을 기꺼이 주고 즐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며 합니다. 문화예술 교육도 마찬가지고요. 예술인들도 자신의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견해를 전했다.

 청년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사업에서도 더욱 지속성을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들어 청년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점점 많아졌지만 사업의 정체성이나 실제 지원 효과에는 물음표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을 위한 사업인지 생활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지원해 주는 사업인지 명확지 않은 경우도 많단다. 그는 단발성 지원을 여러 개 하기보다는 예술가에 대한 실제 생계지원이 따랐으면 한다.

공존하는 풍경_첨단미래도시(2021) <김푸르나 작가 제공>
공존하는 풍경_첨단미래도시(2021) <김푸르나 작가 제공>

 김 작가는 "예술인 복지재단 같은 경우 실제로 생계 지원을 6개월까지 해 줘요. 대신 전시나 작업계획 같은 서류를 내죠. 인천도 청년예술인 지원 예산이 많다면 전시나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 생계 지원을 해 주는 편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또 사업에도 지속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사업을 할 때 이면에 문제가 당연히 생기는데, 그렇다고 사업 자체를 없애 버릴 때면 속상해요. 문제를 놓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모아 헤쳐 갈 방법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고, 정말 좋은 사업이라면 계속할 동력을 함께 고민했으면 해요"라고 강조했다.

 아트랩999로 지역에 기반을 둔 뒤 김 작가의 프로젝트는 원도심 공간을 중심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미추홀구 독정이 마을 도시재생사업에서는 다른 작가들과 오래된 공간과 사라지는 공간을 조사하고 콘텐츠를 발굴했다. 그 결과 ‘독정 거실’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고 독정이 골목에 대한 주민들의 이야기와 사진 아카이브, 설치물 들을 놓았다. 

 수봉공원 아래 오래된 목욕탕인 ‘양지탕’을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에도 참여 중이다. 1층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카페로, 2층은 아이들이 놀 공간으로 꾸미는 구상이다.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개인 작업 비중이 줄어든 편이지만 내년에는 개인전도 계획 중이다. 작품에서 매립으로 조성한 인천의 국제도시 3곳(송도·청라·영종)을 비춰 볼 계획이다.

 김 작가는 "새를 관찰하는 일이 취미여서 개발과 함께 밀려나고 사라지는 생명체들을 살펴왔어요. 매립으로 새 도시를 번쩍하게 만들긴 했지만 그 외곽에는 새나 맹꽁이, 금개구리, 흰발농게 같은 생태문제들이 있죠. 글을 쓰시는 다른 두 연구자와 함께 국제도시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 속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 생각입니다. 올해는 도시와 생태를 연구해 연말에 아카이브 전시를 하려고 해요. 그걸 바탕으로 디지털 패턴을 만들고 학생들과 워크숍을 계획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이미지를 가지고 내년에는 국제도시 세 곳 중 한 곳에서 전시회를 열면 어떨까 해요. 인천이 어떤 곳이고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여기 주변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많은 분들이 함께 관찰하며 알아갔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사진=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 김푸르나 작가 프로필

 김푸르나는 몸과 환경, 생태와 관련된 이슈를 주제로 다양한 예술 분야와 협업하는 시각예술 작가다. 그는 수집한 이미지들을 재조합하고 추출해 패턴 이미지로 제작, 이를 바탕으로 한 공간 설치작업에 주목한다. 또 2015년부터 활동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와 프로그램들을 기획했다.

 CAI PROJECT A.I.R.(2021, 스페인),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2017), 인천아트플랫폼(2016)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블루이미지 프로젝트(2021)’, ‘너의 자리(2019)’, ‘감각이미지연구소(2019)’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지금은 인천문화재단 점점점 사업으로 ‘아트랩999’라는 실험예술공간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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