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태어난 박모(26)씨는 한 살 때 보육시설에 갔다. 어머니는 박 씨를 낳은 뒤 떠났고, 아버지는 보육원을 종종 찾았지만 어느 때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18년 동안 보육시설에서 자란 박 씨는 2015년 2월, 법적 보호 기간이 끝나자 시설에서 나와 ‘자립준비청년’이 됐다.

수원시 자립준비청년 셰어하우스 CON의 거실.
수원시 자립준비청년 셰어하우스 CON의 거실.

 # 연습 없는 출발… 막막한 자립준비청년

 지난해 정부가 ‘보호종료아동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보호아동 중 희망자는 만 24세까지 양육시설에 머물도록 했지만, 2015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보호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을 떠나야 했다.

 자립정착금 500만 원을 받았지만 목돈을 가져 본 적도, 돈을 관리한 적도 없던 박 씨는 금세 다 써 버렸다. 그는 "준비 없이 사회에 나온 자립준비청년은 정착금을 계획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박 씨는 LH 청년전세임대주택에 살며 자동차 정비소에 취직했다. 정비 기술을 배우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서울의 한 음식점에 일자리를 구했다. 주방일을 했는데, 이번에는 잘 맞았다. 음식점 근처에 방을 얻어 생활하며 3년 가까이 즐겁게 일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음식점 사정 탓에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모아 놓은 돈도 없었다.

 고민을 하다가 스승 노릇을 하던 최상규 선한울타리(보호종료아동의 자립을 돕는 비영리단체)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다. 최 씨는 "수원시에서 자립준비청년 공동주거공간에 입주할 청년을 모집하는데 지원해 보라"고 권했다.

 박 씨는 지난 16일 수원시청년지원센터에 면접을 봤고, 이모(24)씨와 함께 ‘자립준비청년 셰어하우스 CON(콘)’ 입주자로 뽑혔다. 이달 말 들어갈 예정이다.

 박 씨는 "자립준비청년들은 집 문제로 어려움을 많이 겪는데, 수원시가 운영하는 셰어하우스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큰 힘이 됐다"며 "수원시 덕분에 큰 고민이 해결됐다"고 기뻐했다. 이어 "수원시에서 오랫동안 안정감 있게 일할 만한 음식점 일자리를 찾는 중"이라며 "음식점 주방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셰어하우스 입주 신청자들은 면접과정을 통해 뽑혔다.
셰어하우스 입주 신청자들은 면접과정을 통해 뽑혔다.

 # 자립준비청년 희망 ‘셰어하우스 CON’

 수원시 청년 주거복지정책인 ‘셰어하우스 CON’ 사업은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기간이 끝나거나 중간에 시설에서 나오는 청년들에게 임차료 없이 2년 동안 편안하게 생활할 만한 공동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자립활동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CON은 Community(지역사회)와 ON(계속)을 합쳐 만든 말이다.

 LH가 가진 매입임대주택을 활용한 셰어하우스 CON은 권선1동·매탄1동 다가구주택에 있다. 한 집에 같은 성(性)의 청년 3명이 함께 살 예정이다. 지금 남자 청년 2명을 뽑았고, 입주자를 더 모집하는 중이다.

 셰어하우스 CON에는 방 3개·화장실 2개가 있고, 가구와 가전제품을 갖췄다. 임대 기간은 9월부터 2024년 9월까지 2년이다. 보증금과 임대료는 수원시가 100% 지원하고, 입주청년은 관리비와 공과금만 내면 된다.

 박 씨는 "최근 자립준비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는데, 그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된다"며 "자립준비청년은 어린 나이부터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해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수원 셰어하우스 CON을 지원하기 위해 2천만 원을 후원했다. <수원시 제공>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수원 셰어하우스 CON을 지원하기 위해 2천만 원을 후원했다. <수원시 제공>

 이어 "자립준비청년에게는 고민이 있을 때 상담도 하고, 자립을 꾸준히 지원할 스승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원시는 입주자에게 살 공간뿐 아니라 ‘자립지원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입주자를 취·창업 관련 기관에 연결해 주고 해당 기관에 추천한다. 또 지역사회 봉사단체와 입주청년을 스승과 제자로 이어 온갖 감정을 나누도록 할 예정이다. 셰어하우스 CON을 나가면 ‘수원시 청년 우선공급 청년임대주택’에 들어갈 우선권을 준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일 ‘셰어하우스 CON’에 설치할 가구를 살 돈 2천만 원을 수원시에 기부했다.

수원시 자립준비청년 셰어하우스 CON의 주방.
수원시 자립준비청년 셰어하우스 CON의 주방.

 수원시는 후원금으로 침대, 침구류, 책상, 옷장, 식탁, 소파, 수납장, 건조기 같은 생활에 필요한 가구와 가전제품을 사서 설치할 예정이다.

 이재준 시장은 "거주 공간도 중요하지만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은 기대고 고민을 나누는 스승"이라며 "자립준비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안경환 기자 jing@kihoilbo.co.kr

사진= <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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