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소설가 신효성

2012-06-25     기호일보
 서쪽하늘이 붉어지는 시간이다. 휘황한 조명이 켜지면서 홍콩 섬의 마천루는 환상을 입는다. 스타의 거리 어디쯤에서 ‘심포니 오브 라이트’쇼를 봤다. 편안하고 적당히 유치한 몸짓을 지극히 관광객다운 일탈이라 여기며 즐겼다.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온 나와 성인으로서의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딸과 짬을 내 여행을 왔다. 서로 바빠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내기가 쉽지 않아서 늘 불발로 끝나곤 했던 여행계획을 이번에 실행에 옮겼다. 아홉 마리 용의 전설을 품은 구룡반도에서 딸도 나도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흔한 이야기대로 이루지 못한 내 꿈을 딸은 당당하게 이루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딸의 어깨를 두드렸다.
라이트 쇼의 메인 광고주는 삼성이다. 가장 중앙에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삼성의 광고판이 자리 잡고 있다. 메인 광고판에는 관광객을 위한 환영 인사말이 흐르고 삼성 광고도 반복적으로 검은 하늘을 장식한다. 모든 것이 풍요한, 우리나라의 위상이 레이저쇼만큼이나 조명 받는 시대에 내 딸은 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친구, 명자·끝선·정희는 멀미나는 비포장도로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딱딱 이가 부딪치는 세월을 감내하며 살았다. 그녀들의 딸과 내 딸은 꼬부랑 전설을 듣는 듯 신기해하고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그리 멀지 않은 엄마의 과거임을 알아 우리의 딸들은 다부지게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있다.
무지개를 사랑하고 별빛에 환상을 실어 보내고….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란 명백한 현실을 알고 있기에 갈등했지만 포기도 쉬웠던 엄마는 지금 붉어지는 서쪽하늘을 향해 가고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말,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어도 아닌데 환경은 많은 것을 제약한다. 일상을 깨는 것으로 일탈이 시작된다면 과장일까?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다. 낯선 세계가 주는 두려움이 불편한 현실보다 더 버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안주에서 오는 체화된 평안에 익숙하다 보니 넓은 하늘을 날아볼 생각을 못하고 날개는 퇴화되고 말았다.

그래도 화려함이 결코 정신적 부를 상징하지는 않는다. 하버시티 명품관에서 유독 시선을 끄는 광고판이 보인다. 단순하지만 품격 있는 몽블랑 필기구의 광고판이다. 흑백의 절제된 글씨체가 고고하다. 화려한 삶이 아니었지만 명자도, 끝선이도, 정희도, 나도 허락된 상황을 잘 견뎌 오늘 이만큼 딸들을 키웠다. 스스로의 못남을 인정하고 익숙한 못남이 애처로워 애정을 주었기에 좌절도 포기도 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가고 어른으로 성숙해지는 세월은 많은 질문을 가슴에 담고 살게 했지만 일상을 숭고한 시간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세월은 벽화를 만들고 벽화는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절제를 배우고 익혀가게 했다. 해발 천 미터에 자라는 식물과 삼천 미터에 자라는 식물이 같을 수 없듯이 키 큰 수목이 자라는 기후가 있고 관목이 숲을 이루는 곳이 있고 이끼와 고산풀이 자라는 지역 역시 다르다.

그래도 한 번쯤은 흥분이 필요한 것 같다. 열정을 쏟아낼 질문을 가지고 세상을 탐구했더라면 이 나이 때쯤 큰 획 하나는 그었지 않았을까 싶다. 허공을 가르는 선명한 레이저쇼의 섬광처럼 세상을 장식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도 참 멋진 일인 데 말이다.
내 딸이 엄마와의 이번 여행에서 호기심으로 빛나는 한줄기 레이저 광선을 발견했으면 한다. 그 호기심의 흥분을 그냥 사그라지게 놔두지 말고 불꽃으로 밤하늘을 수놓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불꽃은 이내 꺼져버리겠지만 불꽃을 피워낸 인내와 흥분과 열정과 몰입이 고상한 종소리를 울릴 힘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엄마의 자궁에서 탄생해 엄마의 가슴에 안겨 보호받다가 엄마의 등뼈를 돋움 삼아 멀리 날아올라 아름다운 비행을 하여라 내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