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2014-03-24     한동식 기자

술이라는 놈은 참 요상하다. 첫 잔을 목구멍으로 넘길 때의 쓰디쓴 맛을 기억한다면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음식이지만 동료들과 어울려 술잔을 부딪치면 어느새 달콤하고 향긋한 감로주로 변한다.

첫 잔의 몸서리치는 쓴맛이 사라지고 동료들과 소리 높여 외치는 건배의 공음(共飮) 속에 술잔이 오가면 그때부터 ‘지킬과 하이드’처럼 내면에 숨겨져 있던 인간의 다양한 본성이 스멀거리며 나타난다. 평소에는 주눅 들어 대거리 한 번 제대로 못했던 하늘같은 선배들도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해지기도 하고 술이 좀 과하다 싶으면 만만한 후배로 보이기도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술안주에는 상사들 뒷담화가 제격이지만 역시 술이 지나치면 상사가 앞에 있건 없건 가리지 않고 욕지거리에 도를 넘는 험담을 쏟아내기도 한다. 술 마시는 사람들끼리야 주사로 쏟아낸 실수를 가지고 뒷날 탓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주당끼리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술이 원수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해서는 안 될 일과 말이 있는데 이러한 금도(禁道)를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술이 원수가 아니라 사람이 원수가 되는 경우다. 술을 제어하지 못하면 술은 감로주가 아니라 못 먹을 음식이 되고 독약이 된다.

단재 신채호가 금주에 대해 남긴 글이 있는데 재미있다. “여보, 세상에 별 이상한 음식도 다 있습데다. 달기는 꿀 같고, 독하기는 비상 같으며, 시원하기는 얼음 같고, 모지기는 뿔 같으며, 칼이 아니건만 창자를 끊고, 여색이 아니건만 정신을 홀려. 귀 밝은 자가 먹으면 귀가 어두우며, 눈 밝은 자가 먹으면 눈이 어두우며, 성한 자가 먹으면 미친 사람이 되어 몸은 반 푼 기력도 없고 마음만 인왕산 만치 커져서 남대문이 개구녁만 하여지며 탁지가 한 푼으로 보이고 육대주 각국이 다 소들하게 보여 일마다 낭패만 하고 …중략… 이 음식 이름은 국문으로 쓰자면 술이라 하며, 한문으로 쓰자면 酒라 하고 그 종류를 분별하여 말하자면 탁주니, 약주니, 소주니, 과하주니, 신청주니, 국화주니, 송엽주니, 포도주니 하는데 나는 그렇게 부르지 않고 다만 못 먹을 음식이라고만 이름 지어 부르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