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휴일 - 꿈의 기능

김진형 동국대 강사

2015-02-12     기호일보

수면은 거의 모든 생물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생으로 깨어 있는 동안 느꼈던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면역력을 재생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수면의 순간에도 우리 뇌는 쉬지 않는다. 그 움직임은 꿈을 통해 나타난다.

분명 눈을 감은 무의식의 수면상태 속에서도 우리는 꿈을 꾸며 그 순간을 생생히 체험한다. 꿈속에서 보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는 등의 모든 행동은 때로 실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시공간과 사람들 속에 뒤섞여 있는 의문의 자신과 조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꿈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뇌에 저장된 기억의 조합으로, 단 한 번도 보거나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면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꾸는 다양한 꿈이란 개인이 인지한 수많은 정보들의 재정리 과정이라 보는 시각도 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응축된 욕망 해소의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꿈을 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복잡하게 얽혀 있던 정보들이 제자리를 찾으며, 낮에 우리를 괴롭혔던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그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이론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오늘은 영화 ‘로마의 휴일’을 꿈의 기능으로 재해석해 보고자 한다.

왕실의 딱딱한 예법과 빡빡한 스케줄에 지친 앤 공주는 로마 방문 일정 중, 남몰래 대사관을 빠져나와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졸음을 못 이긴 그녀는 공원 벤치에서 잠이 들고 만다.

반면, 앤 공주를 취재하러 온 기자 조 브래들리는 길거리에서 잠든 한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잠든 여인을 거리에 방치할 수 없었던 그는 숙녀에게 자신의 하숙집을 내어준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다음 날, 앤 공주는 난생처음으로 자유시간을 갖게 되고 조 브래들리와 함께 로마 곳곳을 여행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한편, 그저 잘 곳조차 없는 불쌍한 여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앤 공주임을 알게 된 기자는 특종을 잡았다는 기쁨에 관광사진을 가장한 특종 사진들을 찍게 된다.

 그러나 순수한 앤 공주의 모습에 동화된 브래들리는 자신의 이기심을 접기로 한다. 비현실적으로 행복했던 하루 동안의 일탈을 뒤로한 채 앤 공주는 왕실로 복귀한다.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애틋한 눈빛으로 서로의 행복을 빌어 준다.

영화 ‘로마의 휴일’은 앤 공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녀의 꿈을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빈틈없이 답답한 왕실 생활은 벗어나고픈 인생의 굴레였다. 언제나 탈출을 꿈꿨을 그녀는 꿈처럼 비현실적인 일탈을 현실에서 경험하게 된다.

비록 24시간의 짧은 한때였지만, 그 꿈의 실현은 앤 공주에게 현실의 스트레스를 극복할 힘을 줬다. 그리고 이는 작품을 접하는 관객에게도 비슷한 효과로 다가오게 된다.

감정 이입을 이끄는 영화의 짜임새는 보는 이들을 오드리 헵번의 천진한 모습과 동일 선상에 둬 시원한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이처럼 영화를 보며 체험하는 관객의 일탈감은 아름다운 로마의 풍광과 어우러져 더욱 극대화된다.

1953년 개봉된 영화 ‘로마의 휴일’은 당시 흥행 보증수표와 같았던 윌리엄 와일러 감독과 그레고리 팩 주연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개봉 이후 대중을 사로잡은 것은 여배우 오드리 헵번의 신선한 모습과 시선을 모으는 로마 관광명소의 풍경, 그리고 일탈의 쾌감을 주는 작품의 매력이 더 큰 인기 비결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