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2016-01-25     기호일보

▲ 신효성 소설가
4시간째다. 그녀의 날 선 시댁 험담은 끝날 기미가 없다. 점심 모임으로 만나 앉자마자 시작된 시댁 사람들에 대한 푸념과 원성이다.

 식사 끝나고 커피 마시는 이 시간까지 그녀의 시댁 사람들은 염치도 없고 심술과 시샘에 분란을 일으키는 악성 바이러스 같은 사람들이다.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도 다시 회귀해 시댁 이야기로 돌아온다. 조금씩 자리가 불편해지면서 짜증이 난다.

 그녀는 가족이나 사람들 사이의 갈등 해소를 상담하고 강의도 하는 직업이다. 독단적이고 냉철한 면이 있어서 상담의뢰인에게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아서 이성적 판단을 내려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상담 사례를 들려주곤 해서 문제 해결 제시에 그녀의 성격이 강점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녀의 판결은 신속하고 거침없다. 상담사례자의 잘못된 무엇이 그 사람을 힘겨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지,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음을 명쾌하게 지적한다.

 때론 심하다 싶은 그녀의 판단에 인간미가 없어 보여도 상담전문가가 보는 관점은 다르겠지 생각했다. 사람이 완벽할 수 없고 세상이 공평할 수 없으니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도 했다.

 우리 모임은 비정규적이라 1년에 많아야 네댓 번이다. 주로 그녀가 제시한 날짜와 시간에 맞추는 편이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모임이 진행된다. 그녀는 자기 스케줄이 비는 날짜와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모이기를 원한다. 각자 사회생활을 하는지라 이런저런 일로 날짜와 시간을 조정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에 단호하다.

 정시 참석이 어려우면 시간 날 때 합류하란 식이다. 내가 바쁜 시간 내서 얼굴 보고 수다 떨고 맛있는 밥 먹자고 통보했는데 군소리 말고 동참해라. 그것도 아니면 너는 빠져라. 네 사정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엇박자로 나오느냐.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장본인은 불협화음을 만든 화합 파기 유발자가 된다. 지탄을 감수하고까지 만나야 하나 갈등이 생긴다.

 나이가 들면서 편한 사람이 좋다. 잘났다고 나서는 사람들 천지인 세상에서 배려와 존중을 나누는 사람이 귀해 보이는 것은 지식보다는 지혜로움이 사람관계를 편하고 따뜻하게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대단한 지능이나 엄청난 능력이 세상을 혁신해서 열등한 중생을 구제하는 수준이면 모를까, 도토리 키 재기 같은 지식과 능력을 우성이라 여겨 자신의 가치에 납득 불가한 프리미엄을 매겨 누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이 불편해진다.

 오늘 그녀와의 모임이 장장 4시간이었다. 언짢은 세상과 언짢은 사람들 성토를 오래 길게 들었다. 바쁜 시간 내서 모처럼 만난 자리가 맛있는 식사처럼 따뜻하고 편안했으면 돌아가는 발걸음도 가볍고 유쾌했을 텐데 마음이 무겁고 생각이 많아진다.

 가끔 내 의견이 없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 같은 경우도 그렇다. 싫어도 상황이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참는 편이다. 세월 지나면 지금 내 경우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 당시 내 입장이 어떠했을지 한번쯤 짚어서 생각해 보고 그랬겠구나, 이해하는 날이 있겠거니 생각한다.

 문제는 내 인내가 예전만 못한다는 것이다. 불편을 참는 것도 무조건 맞춰 주는 것도 꾀가 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품이 원숙해져서 매사 성숙한 어른으로 익어간다고 하는데 거꾸로 참을성이 얕아져 가는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해진다.

 그녀와는 세월을 함께 쌓아 온 시절의 층이 있다. 또래 아이들을 같이 키웠고, 세상 이야기도 함께 했다.

 한참 못 만나고 살아온 세월 저 뒤편에 아지랑이 같이 따뜻한 초보 엄마의 행복도 같이 했던 사람이다.

그녀가 상담자로 이성적인 만큼 자신의 문제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고 살았으면 한다. 그녀를 만나고 오는 내 발걸음도 신이 나 10년을 건너뛰고 만난 해후가 늘 반가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