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말리사 - 새로움과 권태 사이
김진형 동국대 강사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일순간 권태로워질 때가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에 숨이 막힐 무렵 멈출 듯한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어 주는 것은 오직 새로움의 충격뿐이다. 늘 같지 않기에 신선하며, 그 신선함은 죽어 있던 감각세포를 하나하나 일깨운다. 권태로부터 비로소 탈피한 자아는 그렇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도 유효기간이 있는 법. 언제까지나 처음과 같은 신선함을 줄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 그토록 생동감 넘치던 모든 것들도 어느새 익숙한 느낌이 돼 무미건조하게 변해 버리기 마련이다.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 줄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는 인간의 심리는 보편적인 정서다. 오늘 소개할 작품인 ‘아노말리사’는 이례적인 존재와의 변칙적인 경험을 통해 특별한 인연을 맺으려 애쓰는 한 중년 남성에 관한 이야기다.
고객서비스 전문가 마이클 스톤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저서의 강연 차 신시내티로 향한다. 강연을 위해 머무르는 하룻밤이지만 그에게 신시내티는 특별한 곳이다. 10년 전 이곳에서 헤어진 옛 연인인 벨라 생각에 강연 준비에 집중할 수 없었던 스톤은 결국 그녀에게 전화해 만날 것을 제안한다. 10년 만의 만남으로 설렘이 가득했던 스톤은 그러나 벨라를 보는 순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토록 그리워했고 때때로 가슴 아프게 보고 싶었던 여인은 어느새 특별할 것 없는 익숙한 타인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사실 그가 겪는 최근의 일상은 악몽과도 같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이 똑같은 얼굴과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똑같은 톤의 메마른 목소리로 그를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기계 부품들처럼 모든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공포. 그 비참함은 어쩌면 사랑해서 결혼했을지도 모를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까지도 전염돼 있었다.
이처럼 숨막히는 일상의 유일한 탈출구가 돼 줄 구원의 빛을 마이클 스톤은 같은 호텔 투숙객인 리사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지금껏 보고 들은 적이 없는 신비한 새로움으로 다가와 준 여인. 그는 처음 본 이 여인에게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그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영화 ‘아노말리사’는 할리우드의 독창적인 이야기꾼 찰리 카우프만의 첫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그의 2005년도 작품인 ‘이터널 선샤인’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사랑의 희망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이야기한 작품이라면, ‘아노말리사’는 그 희망의 빛이 조금 더 어둡다.
영화의 제목인 아노말리사는 이례적인, 특별한의 의미를 갖는 영단어 아노말리(anomaly)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리사(Lisa)의 이름을 합성한 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리사’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제목의 의미처럼 리사의 존재가 특별함 그 이상인지는 영화를 보며 직접 찾아 보시길 권장한다. 정교하게 구성된 이 작품은 새로움과 권태 사이에서 흔들리고 아파하는 인간인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