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야 한다 모든 절벽과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역사소설가

2016-09-05     기호일보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
중국 근대기의 지성 양계초는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조선 멸망의 원인」을 썼다. 그는 지배층 양반의 탐욕과 당파싸움을 지적하면서 고종(高宗)이 망국 군주의 악덕을 모두 갖췄다고 했다. 그리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조선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며 ‘중국 편에 섰던 사람이 몇 년 안에 다시 일본편이 되고 다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러시아편이 되고 또 변해 일본편이 돼 보살펴 주거나 옹호해줄 수 있는 나라를 따른다’고도 지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낡은 중화사상에서 나왔다고 하는 견해도 있겠으나 꼭 그런 걸까?

 오늘날 입만 열면 ‘애국과 민족’을 말하고 ‘미국에 순종만 하면 만사가 잘 된다’고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의 기득권층 사람들의 실제 행동을 살펴보라. 그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공익이나 국익으로 위장, 은폐하면서 상습적으로 거짓말하지 않는가. 국가 기관의 소위 높은 자리에 내정돼 청문회에 오른 인물들은 예외 없이 심히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출셋길을 달려온 자들이란 걸 우리는 지긋지긋하게 봐 오고 있지 않은가. 더욱 경악스러운 일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썩을 대로 썩어 빠진 기득권층 사회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누리다 보니 진실과 허위, 선과 악, 정의와 부도덕을 분간하는 감각 자체가 아예 마멸돼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자신의 손으로 땀 흘려 정직하게 먹고 사는 가난한 국민들이 개·돼지로 보이는 까닭이 그 때문이라면 과언일까.

 현직 검사장이 100억대 뇌물로 구속되고, 특혜를 받은 대가로 형량을 낮추다가 체포된 부장판사, 돈 받고 죄인을 풀어주는 사람으로 변호사가 매도되는 걸 당연시 보고, 음주운전에 신분까지 은폐해도 경찰청장이 되는 비리공화국의 모습이야말로 조선의 그때와 무엇이 다른가. 한 예를 보자. 우리 주변에 널린 ‘절벽’ 가운데 소비절벽이 있다. 소비절벽을 깨는 제일 좋은 방법은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내년 최저시급을 6천470원으로 정했다. 일본의 최저임금이 물가가 비싼 도쿄가 932엔(1만205원) 제일 싼 미야자키현은 714엔(7천818원)으로 10월부터 시행된다. 이에 대해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부자나라니까 국민소득에 비하면 그리 낮은 액수라고 당국자를 비롯해 경제 관련 단체는 설명하고 있다. 최저시급의 액수로 보면 그 말은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햄버거 빅맥 가격을 비교해 각국 통화의 구매력을 평가하는 빅맥지수라는 것이 있다. 지난 7월에 우리의 빅맥지수는 3.86이다. 햄버거 하나 사먹으려면 3달러86센트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3달러47센트가 된다. 이를 정리하면 일본 도쿄의 최저시급은 9달러12센트, 우리는 5달러78센트다. 도쿄에서 8시간 일하면 72달러96센트, 우리는 46달러24센트다. 이 돈으로 햄버거 빅맥을 사면 일본에서 21개가 되는데 우리는 12개에 불과하다. 물론 최저시급의 시점이 달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본의 21개, 우리의 12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보다 더한 문제가 또 있다. 우리 국민이 외국 정치지도자 가운데 가장 싫어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인 일본의 아베 총리는 "임금을 많이 주라"고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물론 유권자의 표심을 겨냥한 것이지만, 임금이 많이 오르면 경제계가 힘들게 될까봐 안달복달하는 우리 정부 당국과는 사뭇 다르다.

 정리해보자. 지난해 말 우리 국민이 보유한 순자산은 가구당 3억6천만 원으로 일본의 가구당 순자산의 70% 수준이었다. 허나 우리는 자산의 양극화 현상이 일본보다 훨씬 심하고 부동산에 묶여 있는 것이 자산의 ¾이나 돼 필요할 때 지출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불안한 미래, 절망적인 현실, 무너져 내리는 국기(國基)와 국기(國紀).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건 극히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지배 기득권층의 자발적인 선의나 배려에 의해서보다 평등하고 인간적인 사회가 펼쳐지는 일은 없다는 진실이다. 언제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겠으나 이대로 가면 머잖아 지배 기득권층이나 서민층이나 공멸하고 만다. 절벽은 소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싸워야 한다. 평화적으로.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