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포신(除舊布新)의 정신

한동식 정치부장

2016-10-23     기호일보

▲ 한동식 정치부장
세상에는 빨리 바꾸는 게 좋은 것도 있는 반면 그냥 놔둬도 오랫동안 부침을 겪으며 가치를 만들어내고 빛을 내는 것도 있다. 바꾸는 일은 정권이 교체되면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조직과 사람은 물론 이전 정권에서 내건 슬로건이나 국가이미지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바꾼다. 흔히 말하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구악을 해소하겠다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담겠다는 깊은 뜻도 담겨 있을 것이다. 2013년 초로 기억한다. 교수신문은 매년 초 한국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촌철살인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이어지는 초기라 새로운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하늘을 찔렀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들은 묵은 것을 털어내고 새로운 것을 펼쳐 달라는 희망을 담아 올해의 사자성어로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택했다. 새로운 정부는 고질적인 지역 갈등과 이데올로기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가치관 정립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 달라는 희망의 메시지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희망은 1년도 안 돼 교수들의 냉소로 돌아왔다. 교수들은 같은 해 연말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꼽았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민의 기대와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과 인사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희망이 절망이 된 순간이고 그 절망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당시 교수들이 제구포신을 선택한 것은 낡은 것은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이되, 기존의 가치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였다. 또 새로 도입할 것의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우려되는 폐단도 미리 살펴야 한다는 충언이기도 했다.

 요즘 인천이 꼭 이 꼴이다. 도시브랜드 교체를 놓고 시끄럽다. 인천시는 최근 인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기 위해 최근 ‘all ways INCHEON(올 웨이즈 인천)’을 인천의 새로운 도시 브랜드로 확정했다. 하늘 길과 바닷길, 역사의 길, 문화의 길, 세계로의 길, 미래의 길 등 모든 길이 인천으로 통한다는 표현이다. ‘인천이 대한민국의 길을 열고, 세계로의 길을 이을 것’이라는 포부도 담아냈다. 그러나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미 인천은 지난 2006년 ‘Fly Incheon(플라이 인천)’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해왔다. 인천국제공항을 모티브로 역동적인 바다 물결과 두루미의 날갯짓을 표현해 인천을 동북아의 허브도시로 비상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바꾸겠다는 이유 중 당시 플라이(Fly)라는 단어에 쏟아진 악의적 해석이 한몫한다. ‘날다’, ‘비행하다’, ‘빠르다’는 희망적 의미보다는 해충인 파리에 방점을 찍은 결과다. 또 10년이 지났지만 시민이 잘 알지 못한다는 인천발전연구원의 정책 과제도 힘을 보탠 것 같다.

 물론 뉴욕과 베를린, 암스테르담 등의 도시브랜드와 어깨를 견줄 만한 도시브랜드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기존 브랜드를 폐기하고 새롭게 도입하는 도시브랜드는 하자가 없어야 한다. 최소한 도시브랜드라 함은 그 도시의 미래 비전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시민들에게는 자긍심을 고취하고 화합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2억2천여만 원을 들여 시가 내놓은 도시브랜드는 어떠한가. 표절에 재탕 논란에 휩싸였다. 이미 강원도 태백시가 10년 전인 2005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Always Taebaek(올웨이즈 태백)’과 유사하다. 철자뿐 아니라 의미까지 흡사하다. 이뿐 아니다. 대기업 브랜드를 재탕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시 브랜드 업무를 총괄하는 브랜드담당관의 전 직장인 SK텔레콤㈜의 브랜드를 재탕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인천시가 그렇게 바꾸고 싶어 하는 ‘Fly Incheon(플라이 인천)’의 파리 논란은 귀여울 정도다. 바꾸는 것도 좋다. 뭔가 새로운 희망을 담아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각해봐야 할 것은 ‘제구포신’의 정신이다. 낡은 것은 버리되 기존의 가치도 결코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 도입할 것의 폐단은 없는지도 미리 살펴야 한다. 이제는 유정복 시장이 답할 때다. 유 시장은 행정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행정전문가다. 전문가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는 사람이라고 한다. 단순한 비판을 넘어 전면 폐기해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 시장이 귀를 열고 시민과 소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