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바이,웬디- 공존하

김진형 동국대 강사

2020-07-21     기호일보

기상 시간에 일어나 씻고 출근하고, 업무를 보고 퇴근해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다 마무리하는 하루. 누구나 그러하듯 일과는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된다. 그런 시간이 쌓여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채운다. 이처럼 대다수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도전적인 과제가 되기도 한다. 지적장애인이나 자폐성장애인 같은 발달장애인들은 언어, 신체표현, 자기조절과 같은 능력이 크게 지연돼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가족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도움이라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영화 ‘스탠바이, 웬디’를 통해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에 다가가 보자.

웬디의 유년기는 현재와는 분명 달랐다. 전적으로 자신을 지지해 주는 어머니와 동생을 이해하려고 애쓴 언니가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언니도 결혼해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웬디는 시설에 보내진다. 언니에게도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기면서 웬디에게만 온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스케줄에 따라 생활하는 그녀는 평범한 삶의 방식을 배워 간다. TV 시청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웬디는 TV영화 ‘스타트랙’의 열혈 팬이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팬 시나리오 공모전에 출품해 대상을 꿈꾸는 웬디는 그 결과로 언니에게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언니에게 동생은 여전히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불완전한 아이였다. 웬디를 시설에 맡긴 것이 마음 아프기는 하나 가정을 꾸린 언니도 자신의 삶을 살아야 했다. 

언니가 자신을 거부한다고 생각한 웬디는 극도로 흥분하는 바람에 시나리오를 시간 안에 우편으로 부치지 못한다. 촉박한 마감시간 안에 출품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직접 제출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영화사로 찾아가기로 한 웬디. 매일 정해진 장소만 오가던 그녀는 600㎞나 되는 낯설고 긴 여정을 홀로 무탈하게 완수해야 한다.

영화에서 웬디는 결국 시나리오 출품에는 성공하지만 입선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상 여부가 아닌 웬디의 위대한 도전에 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긴 여정을 끝까지 완수한 그녀의 의지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했고, 자신을 한 뼘 더 성장시켰다. 이는 언니에게도 동생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지만 언니는 웬디를 자신의 삶에 편입시키지 않는다. 언니와 동생이 한 발 떨어져 각자의 삶에 충실한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로써 장애인과 가족의 관계는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부담스러운 짐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또한 시설에서의 생활도 버림받은 장소가 아닌 재활과 자립을 돕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는 적절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 속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공존 가능성과 그 가치가 발달장애인의 성장만큼 중요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