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일보 2022 연중기획] 인천 남동구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

나만의 맛·향 찾아 커피가 취미가 되는 ‘세상의 단 한 잔’

2022-06-12     홍봄 기자

한 집 건너 한 집, 알록달록 색색의 간판과 눈에 들어오는 글귀들. 한 손 건너 한 손,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헤아리기 힘든 간판에서 그대로 행인들의 손에 옮긴 듯한 ‘커피(COFFEE)’의 존재.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이 풍경은 대한민국이 왜 커피공화국으로 불리는지 실감케 한다.

 ‘그곳’을 찾은 초여름의 날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부터 입구를 지나쳐 대로를 걷는 동안 수많은 커피전문점을 스쳐 지났다. 무언가 달라졌다고 한다면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거리를 채웠던 간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 목적지에 도달해 한참을 헤맨 뒤에야 있는 듯 없는 듯 녹아든 공간의 존재를 발견했다.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 위치한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은 "이 커피 꼭 마실래"하고 일부러 찾아가야만 하는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반경 수m 내에서 커피를 구하는 요즘 세상에 노력해야 마시는 커피라니. 가게에 들어서 메뉴를 보는 순간까지는 뭔가 의문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냥 커피숍 같은데. 여기서 세상에 단 한 잔뿐인 커피를 만난다고?’

민병현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 대표.

# 세상에 같은 커피는 없다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의 커피가 단 한 잔뿐이라 말하는 이유는 커피원두에서부터 시작된다. 커피콩이 나는 지역의 토양과 기후, 농부의 노하우에 따라 매년 원두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정 와인을 규정 지을 때 생산년도와 지역, 와이너리(양조장) 등을 복합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듯 커피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같은 커피는 없다는 사실. 살아있는 커피의 매력이다.

"커피는 생물이기 때문에 해가 바뀌면 뉘앙스가 바뀌어요. 지난해 수확한 커피가 지금 나오는데 똑같은 콩을 내년에는 만나지 못하죠. 심지어 한 나무에 나는 열매의 맛도 다 다르거든요. 손님께서 지금 드시는 커피가 이 순간밖에 못 먹는 맛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죠. 100% 같은 커피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커피 신’이 와도 하지 못하겠지만, 손님들이 좋아해 주는 맛을 가장 가깝게 하려고 노력해요."

태생부터 각각의 특성을 갖춘 원두는 민병현(37)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 대표의 손을 거쳐 보다 개성을 갖는다. 다양한 특성을 감안해 손님에게 선보일 만한 콩을 선택하고 열을 가해 볶는 로스팅 과정이다. 제각각 다른 원두를 누가 로스팅하는지에 따라 커피는 한 번 더 달라진다. 아무리 커피 전문가에게 같은 재료를 주고 로스팅하고 추출하라고 한들 절대 똑같은 커피는 만들지는 못한단다. 손님들이 원두 이름을 보고 가게를 찾더라도 누구의 손을 거쳤느냐에 따라 느끼는 맛의 차이가 난다.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 내부.

# 하나뿐인 커피는 열정에서 나온다

이 과정만 제대로 해도 맛있는 커피를 손님에게 내놓기엔 무리가 없다. 하지만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에서는 신중하게 선별한 모든 원두가 손님들을 만나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 거치는 테스팅이 이곳의 커피를 더 특별하게 하는 비결이다.

일반적인 카페에서 커피콩을 주문하고 로스팅하면 2일 만에 손님들에게 낸다. 하지만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에서는 샘플링을 2주 하면서 어떤 특성이 있는지 체크한다. 로스팅까지 하려면 2~3주가 걸린다. 가게에는 생두까지 해서 50종류 정도의 원두가 있다.

테스팅부터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장비들이 등장한다. 생두 100g이 들어가는 샘플로스터리 기계는 그야말로 소량씩 샘플을 로스팅하는 용도로 쓰이는 장비다 보니 일반적인 매장에는 잘 두지 않는다. 이 기계는 커피를 어떻게 연출할까를 구상하고 찾아내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 로스팅 후 사용하는 색도계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총 같이 생긴 색도계를 잘 볶아진 원두 위에 대고 버튼을 누르면 색깔에 따라 ‘라이트’, ‘미디엄’ 등 로스팅된 정도가 화면에 표시된다. 이런 노력을 거쳐 특정 원두가 가장 맛있는 로스팅 정도를 찾는다.

"원두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습도 많은 날은 수분을 날려야 하는 정도가 다르죠. 물론 관능적인 부분이 중요하지만, 물리적인 내용도 기록해 놓고 가려고 해요. 색도계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비는 아니지만 맛의 일관성을 갖고 싶어서 구비했어요. 매장 운영은 오후 7시에 끝나지만 이런 작업들은 보통 자정 정도까지 이어져요. 커피를 드시러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실망시켜 드리기 싫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 욕심이죠."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 다양한 원두 모습.

# 스스로 선택하고 느끼는 커피의 맛

처음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민 대표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뭔가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한다. 35㎡ 공간의 오른쪽 벽에는 5~6개의 원두가 든 유리병이 비치됐다. 손님들은 분쇄해 병에 담아 둔 가루의 향을 맡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원두를 고른다. 여기서 팁은 냄새를 맡고 스스로 판단하기 전까지는 아래에 놓인 노트를 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민 대표가 직접 작성하는 노트에는 원두명과 커피 맛에 대한 정보가 적혔다.

민 대표는 "노트를 먼저 보면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에 시향을 먼저 하시라고 권유해요. 노트도 제 생각을 쓴거지 정답은 아니니까요. 처음부터 품종이나 가격을 보고 접근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먹었을 때 맛있으면 좋은 커피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날도 민 대표는 원두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커피 두 잔을 기자에게 내밀었다. "느껴지는 대로 이야기해 달라"는 주문도 따라왔다. 평소 ‘모든 커피가 맛있다’고 생각해 온데다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은 터라 시험을 보듯 곤혹스러워졌다. 첫 번째로 ‘커피가 커피지 무슨 맛을 말하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다음으로는 답을 틀릴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분명 답은 없다고 했지만 커피 향을 맡고 맛을 느끼는 순간 특정할 수밖에 없는 단어들이 떠올랐다.

차갑게 마신 첫 번째 커피에서는 포도 맛이 났다. 여러 커피전문점을 다니며 과일향이 난다는 원두를 골라 보기도 했지만 이렇게 특정 과일향이 느껴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향과 맛을 충분히 즐긴 뒤에야 민 대표는 ‘그레이프’라는 원두 이름을 알려 줬다. 뜨겁게 받은 두 번째 잔은 보다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향이었다. 고민 끝에 "위스키 향이 난다"고 답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다른 손님들도 비슷한 대답을 했단다. ‘한국에 90㎏밖에 들어오지 않은 원두’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 인생에 단 한 잔뿐인 커피겠구나’하고 실감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왜 사람들이 특별한 커피를 찾아 마시는지 고개가 끄덕여질 경험이었다.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의 샘플 로스터리 기계. 생두를 소량씩 로스팅해 테스트 가능하다.

# 커피가 취미가 되는 그날까지 ‘스페셜티 커피의 문’ 역할

"카페 운영과 커피를 하는 일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애견카페, 갤러리카페를 생각해 보면 쉽죠. 주가 무엇이 되느냐죠. 신경을 쓰는 부분이 공간이 되기도 하고, 커피가 되기도 하죠. 갤러리카페에서는 작품이 주가 되듯 저는 커피에 가장 비중을 둬서 신경을 써요. 그렇다 보니 목적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오시죠. 일전에 할아버지 세 분이 오셔서 커피를 즐기시던 모습이 인상에 남아요. 70대 이상으로 보이셨는데, 예전에 외국에서 이렇게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다며 만족하고 돌아가셨어요. 저는 커피가 미식의 영역으로 진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비싼 커피에는 그 이유와 노력이 있어야겠죠."

민 대표의 목표는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일조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도록, 또 ‘이런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더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까 늘 고민한다. ‘스페셜티 커피의 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다. 커피를 어렵지 않게 경험하고,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생활 속에서 즐기게끔 만들고 싶다.

많은 분들이 즐겨 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커피가 ‘좋은 취미’라 생각해서다. 힘들이지 않아도 많은 카페들을 찾는데다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서도 가능한 취미다. 전 세계에 카페가 있는데 나라마다 바뀌는 커피의 특성을 경험하고 즐긴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남녀노소 불문하고 함께하는 취미라는 점도 커피의 강점이다. 여러 명이 모여서 같이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일을 ‘커핑’, ‘퍼블릭테이스팅’, ‘퍼블릭커핑’이라고 하는데, 민 대표는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에서 그 일을 하고 싶다.

그는 "커피는 마시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3~4명이 모여서 같이 마시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어요. 좋은 샘플 콩이 항상 있으니까 다양하게 마셔 보고 이야기하기도 좋죠. 힘들게 찾아오신 분들께 항상 만족을 드리는 아카이브커피스테이션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