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이 꼭 한 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두둥실 떠오를 한가위 보름달.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느낌이 올해는 어떤 것일까. 어떤 사람에게는 그 달빛이 지극히 밝고 풍성하게 느껴질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애와 시름의 의미로 비칠 것이다. 매일 행복과 양광(陽光)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날들의 연속일 터이니 달빛이 새삼스레 밝아 뵈고, 뿌듯한 정감으로 여겨지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이날이 외롭고 서러운 사람들은 저 환한 달빛을 외면한 채 차라리 고개숙여 눈 감을지 모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오늘 그 달 그늘에 가린 사람들은 아마 조상 대대로 몇 천 년을 이어 저 달빛에 기원하던, 이 지극히 소박하고 겸손한 원망(願望)의 말조차도 언감생심(焉敢生心)이 될 것이다.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내고 그저 식구들과 한때나마 둘러앉을 수 있는 행복. 더도 덜도 아닌 그 정도, 그만한 풍요! 이것이 한가위 보름달빛의 진짜 의미가 아니었으랴.

어찌 생각하면 이 말은 심오한 자연 사상까지도 내포한 듯하다. 풍요한 자연 모습 그대로 들판 여기저기에 아무런 가식 없이 익어 누렇게 고개를 숙인 벼, 진실로 붉게 익은 대추알들, 밤, 감, 배, 사과…. 이런 것들의 원래 모습, 원래 의미에 다가가 간절하게, 진정 인간의 감사를 바치고 싶은 겸허한 심정. 대보름달빛의 참의미는 정녕 이러한 것이었을 터이다.

지금이라도 생각해 보자. 오늘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마음으로, 인간의 가슴으로 한가위 달빛을 받을 수 있는지. 그래서 달빛을 받는 것마저 호사로 여길 수밖에 없는 작은 사람들, 낮은 사람들 곁에 설 수 있는지. 우선 한 장의 신문을 펼쳐 놓고 기도를 올려 보자.

‘정부·노조·교육 시스템이 대한민국을 후퇴시키지 않게 하소서’ '정부가 잔류 농약 대책 마련을 서둘게 하소서’ ‘무늬만 생산적 복지가 아니게 하소서’ ‘교통 체증 유발 도심 집회는 금지하게 하소서’ ‘한·미 FTA에 관한 5가지 오해를 풀게 해 주소서’ ‘북 정치범 제재 철폐하게 하소서’ ‘KBS 사장의 연임이 시끄럽지 않게 하소서’ ‘대법원장도 말 실수를 할 수 있는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소서’ ‘헌법재판소장도 어서 자리에 앉게 해 주소서’ ‘이승엽이 속히 40개 홈런을 넘어서게 해 주소서’ ‘고구려가 함부로 중국에게 짓밟히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이런 기도는 진정한 자연의 기도는 아니다. 저 보름달빛이 지상을 비추는 참의미가 아니다. 이보다 더 급하고 진실하고 더 인간적인 기도는 다음과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 뒤에 시작해야 하는 기도이다.

“가난한 우리 아빠, 그래서 어린이집 왔지만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요. 아빠, 빨리 힘내서 우리 같이 살아요.”

“아빠랑 갔던 파란 바다를 그렸어요. 이번 추석엔 꿈에라도 보러 와 줬으면…. 보고 싶어도 꾹 참을 거야.”

4층 여관의 옥상 한 편에 있는 두 평짜리 쪽방에서 쓴 다람이와 보람이가 쓰는 그 안쓰러운 ‘희망 일기’를 우리는 읽어야 한다. ‘아빠 장례식 날 딱 한 번 울었다’는 11살짜리 희은이. “꾹 참아요. 울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속상하잖아요.”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한가위 달빛이 비쳐지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고 추석이고 인간의 길이다.

일 년에 꼭 한 번 오는 날이고, 그런 날에 꼭 한 번만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니, 굳이 이 글을 ‘금요논단’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둬 두지 말자. 논단이 아니고 ‘내’가 ‘나에게’ 주는 글이라고 생각해 보자. 진실로 진실로 이야기하거니와, 겸허한 마음으로 어떤 사람들이 이 명절이 기쁘고 행복하며, 어떤 사람들이 외롭고 슬픈가를 깊이 생각해 보고, 그리고 그대로 온전히 우리의 마음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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