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창업을 준비하는 한 대학생이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해서 은퇴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커피숍에 들어갔습니다.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던 사이여서 그런지 주인은 "가게 문을 닫을 수도, 그렇다고 열어둘 수도 없어 난감합니다"라고 속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친구의 얼굴이 아른거렸습니다. 1년 전에 새 사업에 투자했다가 코로나 사태가 이어지는 바람에 얼굴이 바싹 타버린 그가 떠올라 가슴이 아팠습니다.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그들의 모습을 헤아릴 때 문득 조용필 씨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랫말이 생각났습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표범은 왜 숲속에서 지나가는 먹이를 쉽게 구하지 않고 굳이 킬리만자로 정상까지 힘들게 올라가야만 했을까요? 혹시 정상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 선뜻 고행의 길로 나선 것은 아닐까요. 그 길은 무척이나 외롭고 고독했을 겁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상에 올라 들판에서 수월하게 살아가는 표범들에게 가르침이 되는 무언가를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이런 태도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외로움’과 ‘고독’은 어떤 점이 다를까를 생각해봅니다. 외로움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났을 때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그 사람이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그 결과로 나는 극심한 외로움을 겪는 겁니다. 즉, 외로움은 상대의 결정에 따라 내가 겪는 고통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러나 고독감은 나 스스로가 결정한 감정입니다. 

마치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가겠노라고 결심한 표범이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면서도 그 길을 올라갈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고독의 길은 올라가는 과정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무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모든 성취는 고독이라는 고통이 주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강렬한 꿈’이 있는 사람만이 기꺼이 고독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고독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인생」(구본형 저)에서 저자는 "스스로 깨달은 진실과 통찰을 오랫동안 지키고 매일 수련하다 보면 세상과의 괴리 때문에 고독해지게 마련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매일 하는 것, 그것이 곧 고독이다. 고독에 지면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꿈은 사라지고, 평범한 곳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고독을 견디는 자만이 위대해진다"라고 고통에 지친 우리를 위로해줍니다.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려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절대 고독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지도 모릅니다. 

「내 영혼의 산책」(박원종 저)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다락방에서 나만의 은밀한 시간을 즐기곤 했었다. 어쩌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그곳에서 나만의 자유, 혼자만의 고독을 즐겼던 거다. 다락방은 외형적으로는 작은 공간에 불과하지만, 우주 너머까지도 꿈꿀 수 있는 넓고도 원대한 꿈의 공간이기도 했다. 진정한 고독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철저한 자아탐구와 자기성찰인 동시에 진리와 자유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다. 정체된 삶, 나태하고 무기력한 현실에 대한 경종의 시간도 된다."

퇴직금을 탈탈 털어 마련한 커피숍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노부부와 빌린 돈을 몽땅 쏟아부은 사업이 부도 위기에 몰린 친구가 겪고 있을 절망감과 외로움을 헤아리면 제 마음도 몹시 아픕니다. 그러나 저는 이분들의 삶을 보면서 썩은 돈 냄새가 나는 곳이나 권력의 언저리나 맴도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가쁜 숨을 내쉬며 킬리만자로의 산정을 향해 오르는 표범의 모습을 봅니다. 힘드시지만 조금만 더 견디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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