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김지현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한국은 지난 50년간 가파른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국제경제에서 주요한 행위자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성장 이면에 출생률, 노인빈곤율, 자살률처럼 우리 사회 현주소를 보여 주는 지표들 대부분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위기는 우리 삶과 사회 존속에 꼭 필요한 활동들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성장 위주 사회에서 비롯한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을 간과해 온 활동 중심에는 돌봄이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돌봄일자리는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채워지는 가족, 이웃 등 비공식 돌봄은 현 사회체제를 떠받드는 명백한 소득 창출 기여 활동임에도 그 가치를 경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돌봄은 하면 할수록 경제적 불이익이 커진다. 경제적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또다시 돌봄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서 돌봄의 부정의는 계속해서 공고화한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돌봄의 불이익을 어느 특정 성(性), 계층, 집단에게만 몰아주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큰 틀에서는 모든 시민이 (무엇인가를) 돌보는 사람이자 노동자임을 전제하고 사회경제체제를 재구조화해야 한다. 낸시 프레이저가 제안한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이다.

참여소득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정치공동체가 일정 수준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로 정의한다. 참여소득이 돌봄위기 대안이 되는 이유는 유급노동을 넘어 봉사활동이나 환경보호, 무엇보다 돌봄(가사)활동 같은 광범위한 사회기여행위에 대한 인정을 전면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 단순히 이러한 활동에 대한 인정과 지원을 넘어 수급자 개인이 주도적으로 역량을 강화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할 가능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제로 참여소득은 국내외에서 기존 사회보장제도(공공부조 등) 수급 조건에 사회적 가치활동을 포함하거나, 돌봄(자)수당 등 현금급여를 지급하거나 혹은 공동체 협력을 통한 사회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실현한 바 있다.

개념적으로 참여소득에 가장 가까운 사회보장제도로서 우리나라에는 기회소득이 있다.

기회소득은 민선8기 경기도의 역점사업 중 하나로, 사회적으로 가치를 창출하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해당 활동을 지속하도록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다. 2023년 예술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며, 2024년 이후 아동돌봄공동체를 지원하는 형태로 돌봄 영역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급여의 적정성을 보장한다는 전제 하에 기회소득은 원하지 않는 노동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돌봄을 장려하는 효과와 평등한 돌봄배분을 가져온다.

단, 기회소득 하나만으로는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먼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유급노동시간을 줄여 모든 노동자의 돌봄시간을 확보해야 하고, 돌봄 필요에 따라 근무일정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

유급노동이 아닌 돌봄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시간을 재편해야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시민에 남성이 포함되지 않으면 돌봄의 부정의는 더 강화될 뿐이다. 시장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를 높이기 위해 할당제를 실시하듯, 남성의 돌봄을 장려하는 적극 조치가 필요하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기회소득이 단순히 돌봄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당을 부여하는 제도가 아닌, 돌봄 중심사회로의 거대한 전환의 물꼬를 트는 장치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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