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身言書判). 당나라 문인 두우(杜佑)가 인재를 평가할 때 내세운 네 가지 기준이다. 몸가짐(身)과 소통(言), 문서(書), 판단력(判)을 통해 사람의 됨됨이와 역량을 가늠한 이 틀은 AI 시대인 요즘도 정치지도자를 바라보는 준거로 여전히 유효하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3선 국회의원, 두 차례 장관을 거쳐 대선 경선에도 참여한 중량급 보수 정치인이다. 그러나 민선8기 인천시정을 이끄는 그의 리더십과 인사 스타일은 화려한 정치이력에서 기대된 중량감에 비해 경량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발은 파격이었다. 첫 여성 정무부시장과 청년특보, 시민단체 인사를 줄줄이 발탁하면서 취임 초 변화에 대한 기대를 걸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는 곧 3년 넘게 이어진 선거 유공자 논공행상의 서막에 불과했다. 실질적인 핵심 보직은 유 시장과의 학연·지연, 정치적 측근으로 채워졌고 외형은 포용적이었지만 내용은 협소했다.
특히 정무라인은 6개월 단위로 교체되는 회전문 인사가 반복되며 시정의 안정성과 정책의 연속성을 흔들었다. 민심과의 접점을 강화해야 할 정무 기능이 오히려 혼선을 초래한 셈이다.
결정적인 장면은 최근 최측근의 실언에서 드러났다. 유 시장의 정무수석이 유튜브 채널에서 “유 시장은 다음 선거에서 낙마할 것”이라고 공개 발언한 것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인사 참사의 축소판이다.
공적 언어의 무게와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에서의 일탈은 유 시장의 메시지 관리 실패로 직결된다. 앞서서도 정무라인의 역할 부재로 인한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정무진이 6개월마다 교체되는 것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유 시장은 이들을 ‘검증된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감싸며 다른 보직에 배려하는 등 회전문 인사로 이어졌다. 이는 결과적으로 외부 인재 유입 가능성을 좁히고 시정을 개인적 신뢰라는 협소한 잣대로 운용하는 폐쇄적 구조를 고착시켰다.
반면 ‘문서(書)’에 해당하는 행정 능력이나 조직 설계는 관료 출신답게 정교하다. 부서 간 기능 분장, 정책 집행의 기술적 완성도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정책이나 인사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시민에게 설득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균형발전 전략으로 제시한 ‘제물포르네상스’도, 중단된 ‘뉴홍콩시티’도 그랬다. 기술은 있으되 철학과 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판단력(判) 측면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유 시장은 최근 정무라인의 대대적 개편에 착수했다. 내년 선거 진용을 꾸리기 위한 참모 재편에 나선 것이다. 정무직 수석 체제를 7명으로 확대하고, 그중 핵심인 2급 수석 자리에 중량감 있는 인사를 앉히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거론되는 인물들이 또다시 논란이다. 전략수석 후보로는 박근혜 정부의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으로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은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정무수석 후보로는 윤석열 정부 국무총리실 비서관 출신 이충현 씨가 거론된다.
각각 박근혜 탄핵과 윤석열 탄핵 혼란기에 활동했던 경력을 가진 인사라는 점에서 인천시의 정무라인으로 적합한 인물이냐는 의문이 시민사회에서 제기된다. 과연 이들의 ‘중량감’이 인천을 위한 무게감인지, 정치적 부담감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결국 유 시장의 인사 스타일은 전통 보수주의의 전형을 보여 준다. 외형은 단정하지만 개방성은 부족하고, 언어는 익숙하되 확장성은 약하다. 기술은 정교하지만 공감의 리더십은 빈약하며, 판단은 신중하되 도전은 없다.
내년 지방선거가 10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시민은 인사를 통해 시장의 비전과 리더십을 판단한다. 단순히 사람만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인사를 대하는 철학과 태도를 혁신하지 않는다면 유 시장의 정치적 무게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인천의 미래는 과거를 끌어안는 인사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인물들과 어떤 방식으로 일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