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준 경제부국장
김기준 경제부국장

경제부에 근무하다 보니 생활 패턴이 바뀐 게 하나 있다. 잦은 조찬 및 만찬 강연회 참석에 따른 반강제적 공부다. 대부분 오전 7시 30분께 시작하는 아침 행사에는 대다수 경제인이 30분 전에 도착해 안부를 묻고 수인사를 나눈다. 이어 1시간 30분 강연을 듣고 식사를 함께하며 속 깊은 토론을 벌인다.

대표적 모임이 인천경영포럼이다. 10월 23일 ‘500회 특별강연’으로 대한민국 최고령(105세) 수필가이자 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초빙해 ‘삶, 100년을 되돌아보다’를 들을 예정인 경영포럼은 올해로 창립 26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경제인 스터디그룹이다. 2주에 한 번씩 정기 행사를 여는데 경제전문가는 물론 인문·건강·안보·정치 분야까지 다양한 강사진을 부른다. 

지난달 28일에는 이인재 인천대 총장이 나와 ‘한국의 노동시장: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애교심 강한 인천대 출신 일부 CEO가 사립대에서 출발해 시립대를 거쳐 국립대로 신분이 변한 모교의 새 총장에게서 학교 자랑을 듣기 바라는 눈치였지만 학자 출신답게 자신의 전공인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강연하며 사회적 모순 해결 방안 제시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동국가산업단지 내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다가 인천 전체로 범위를 넓힌 인천산업단지 CEO아카데미도 기자가 꾸준히 참석하는 조찬 행사다. 그동안 옛 송도에서 열렸으나 오는 17일 38회부터 ‘경원재 바이 워커힐’로 장소를 옮겨 업그레이드를 시도한다. 3년이란 짧은 역사지만 경제인 중심의 강사진이 어느 모임보다 중량감 있는 게 장점이다.

사실 기자는 경제단체 조찬 강연 취재를 시작할 때 ‘인천에서 성공한 CEO의 짬짜미(?) 모임’ 정도로 생각했다. 코로나를 거치며 직장도 재택 근무로 대신할 수 있는 온라인 유튜브 시대에 따로 회비 내며 아침부터 호텔 홀에 모여 강연을 듣고 밥을 먹는 모임이 있다는 게 시류에 뒤떨어져 보였다. 인천엔 1986년 4월 개최한 이래 매월 둘째 수요일 영락없이 열리는 ‘새얼아침대화’가 있어 조찬 모임의 위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아류 행사’ 정도로 섣불리 판단했다.

하지만 한 달에 3∼4회 아침 맑은 정신에 다양한 분야의 수준 높은 강사에게서 1시간 반씩 강연을 듣고 기사로 정리하다 보니 상식이 조금씩 쌓이는 듯했고, 분위기에 중독돼 뭔가 배워야 한다는 강박도 생겼다. 어느 사회학자가 “성공한 기업인들이 관련 분야 사람들만 만나게 되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낙오하게 된다”며 각종 포럼 참여를 독려하는 방송을 들은 적이 있는 데, 기업인들이 사회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눈비 속에서도 휴강 없이 자기 계발을 하는 모습에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부지런함과 공부하는 열정이 오늘의 경제도시 인천을 만든 힘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동네 어르신 같았던 어느 기업인이 경영부터 정치·천문 분야까지 박학다식하다는 걸 확인하게 됐고, 행사에 제공되는 물건 납품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참석하는 소사장에게서 ‘성심’의 의미를 되새기게 됐다. 우주 여행까지 한 천문학자가 인천 교통체증을 예측하지 못해 강의시간에 겨우 도착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멀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까운 거리도 쉽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차관 출신 전 중앙 경제단체 회장은 마무리해 달라는 사회자의 거듭된 당부에도 한국 경제의 위기를 알리기 위해 식사 시간을 아껴 가며 명강연을 펼쳐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무엇보다 숫자가 아닌 일선 기업인의 표정을 통해 현 경제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게 조찬 경제인 모임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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