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 끔찍한 살인, 아동·청소년 범죄, 극단적 선택이 끊이지 않는다. 아동 가정폭력과 청소년 간 집단폭력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며 안전해야 할 가정과 학교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 준다.
아이들이 폭력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장면은 한국사회의 정신건강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치인과 지도자들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세 치 혀’로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여전히 맹목적인 패거리 문화가 판을 친다. 진실과는 상관없이 사회는 편 가르고 갈라지는 방식으로 나뉘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 사회는 각박하다. 사회 전반에 상호존중과 배려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에서는 학생 권리와 학부모의 영향력만 커졌을 뿐 교권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어른들의 범죄를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국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 준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 스트레스지수 1위, 국민행복지수 137개국 중 57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력 뒤에 국민의 마음은 무너져 있다. 숫자는 냉정하다. 외형은 성장했지만 내면은 병들었다.
우리사회의 병은 구조적이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며 기회의 사다리는 무너졌다. 황금만능주의는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 재단하고 승자만 기억하는 경쟁사회는 낙오자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지도층의 도덕불감증은 국민에게 환멸과 불신을 안겨 주고 불공정의 고통은 서민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분노와 허탈감은 곪아가고 결국 폭력과 극단적 선택으로 표출된다.
무너진 가족공동체 역시 문제다. 가족은 최소한의 안식처여야 하지만 경제적 압박과 사회적 스트레스가 쌓이며 서로를 위로하기보다 상처 주는 공간으로 변했다.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아이는 부모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웃과 지역사회와의 유대감도 약화됐다. 공동체의 끈이 끊어진 사회에서 개인은 고립되고 마음의 병은 깊어진다.
때문에 ‘마음 근육’을 키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정신건강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공동체의 힘과 직결된다. 몸의 근육을 단련하듯 마음도 단련해야 한다. 상담과 치료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일상에서 마음을 돌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학교, 직장,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예방 시스템도 강화하고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국내 최고의 청소년 단체 중 하나인 푸른나무재단이 11월 준비 중인 ‘마인드런’ 페스티벌은 의미심장하다. 이름 그대로 마음 마라톤, 곧 마인드런은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다. 러닝을 통해 스스로를 돌보고 함께 뛰며 마음을 회복하는 국민건강 프로젝트다. 학교폭력, 사이버폭력, 도박중독 등 정신건강 위기를 예방하자는 취지다. 달리기를 통해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단련하고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나누는 상징적 실천이다.
정신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고 직장은 경쟁보다 존중을 우선하는 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상담·치유 체계를 촘촘히 세우고 가정과 공동체가 회복의 거점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자체와 학교, 시민단체가 협력해 예방 프로그램과 심리치료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마음이 무너지면 사회는 지속할 수 없다. 마음 근육을 키우고 마음 마라톤을 함께 달릴 때 한국사회는 비로소 회복의 길을 찾는다. 건강한 마음을 가진 국민이야말로 건강한 나라의 기초다. 절망의 통계를 바꿀 힘은 우리 마음을 지키려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정신건강을 지키는 일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