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장래를 위해 지방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을 계속 주장해 나갈 것입니다."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경선 1차 결과 발표에서 탈락한 다음 날인 4월 23일 유정복 인천시장이 시청 기자실을 찾았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면 복잡한 정치적 역학, 이익관계 때문에 개헌에 소극적인 사례를 많이 봤는데 이걸 깨야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이 이뤄집니다"라며 개헌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에게는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통로가 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그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협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동 문제를 논의하고 중앙지방협력회의를 통해 나라의 주요 현안을 협의하는 기구로 대통령이 주재한다. 협의회장과 총리가 부의장을 맡고 주요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다. 분기마다 대통령이 소집하도록 돼 있다.
지난 계엄 정국 와중에 유정복 시장에 의해 다시 발화된 개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대통령과 국회의 과도한 권한·특권의 제한, 중앙에 집중된 권력의 분산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이 시급하다는 데 토를 달 국민은 별로 없다. 유 시장은 또 경선기간 정부 조직의 개혁,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모두 징병제, 출생정책 강화 등의 어젠다를 제시했다. 비대해져만 가는 정부기구의 개편, 남녀가 국방의무를 지는 모두 징병제,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인 출생정책은 시의적절하고 유의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9일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앞에서의 출마선언부터 22일 1차 경선 발표까지 딱 14일이었다. 그는 100% 국민 여론조사로 진행된 경선 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면서도 경선 과정의 구조적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진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그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인지도 중심의 인기투표 방식, 유튜브 플랫폼에만 의존한 TV토론 중계로 유권자들의 알 권리가 제한된 점은 앞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시장은 인천시정의 책임자로 다시 돌아왔다. 남은 임기 업무에 매진하겠다고 밝힌 그의 앞에는 해묵은 과제들이 쌓여 있다. 당장 시급한 수도권매립지 대체매립지 확보, 강화도 남단 경제자유구역 지정, 제2인천의료원 개원,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인천형 출생정책의 국가 지원 및 사업화 등이다. 6월 3일 대통령선거 결과는 인천시정에도 중대한 변수다. 만약 정권이 교체되면 대정부 협의나 협력, 지원이 팍팍해질 수 있다. 같은 당이었던 지금까지도 쉽지 않았던 현안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의 정치력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가 출마한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웃한 사람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여러 번의 기초·광역자치단체장, 당 대표 비서실장, 세 번의 국회의원과 두 차례의 입각 등 화려한 정치 경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는 미약했다. 또 당과 중앙정치 무대에서 기반이 엷다는 지적이 늘 따라다닌 데 따른 우려 섞인 시선이었다. ‘정책’과 ‘실천’에선 강했지만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이번 경선은 다시 한번 보여 줬다.
그렇다고 비록 14일 만에 끝난, 어찌 보면 무모할 수도 있었던 이번 도전이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정복 개인에게나, 인천에 든든한 무형의 자산이 된 경선 출마 의미를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잘 정리했다. "인천에서 대선 경선에 참여한 인물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며, 유 시장의 출마는 인천 정치가 중앙정치의 중심 무대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다. 비록 최종 후보가 되지는 못했지만 경선을 통해 확보한 전국적 인지도와 네트워크는 향후 지역 현안 대응에 실질적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선에 이어 꼭 1년 뒤면 또 지방선거다. 내년 지방선거는 그 전과는 달라진 법과 제도, 환경 속에서 치러질 수 있을까? 유정복, 그가 처음 불을 지핀 개헌을 통해 우리 정치개혁, 정치사에 과연 어떤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을지, 2026년 지방선거에서는 또 어떤 여정을 이어 나갈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