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 논설위원
이인수 논설위원

이준석 개혁신당 국회의원의 의원직 제명 국민동의청원이 진행 중이다. 6월 4일 공개된 이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이준석 제명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와 의견을 꾸준히 국회에 전달하고 끊임없이 행동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50만을 돌파했을 때 나온 "숫자에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이준석), "국민 여론을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다"(천하람)는 발언이 감정의 불에 기름을 부은 모양새다. 청원은 7월 5일 마감된다.

대통령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 5월 27일 당시 이준석 후보는 3차 방송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가족을 검증한다는 명분으로 여성의 신체와 관련된 발언을 했다. 매우 노골적이고 부적절했다. TV 앞에 있던 많은 국민들은 깜짝 놀랐다. 비난이 비 오듯 했다. 이후 지지도는 떨어졌고 득표율은 10%에도 못 미쳤다. 그가 국회에서 어떤 조치를 당하든, 아니든, 본인이 절절하게 반성을 하든, 안 하든 이번 ‘말(言)’로 인한 ‘화(禍)’는 앞으로 그의 정치인생에 두고두고 무거운 족쇄가 될 것이다.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은 조선 선조 때 관료이자 정치가다. 우리에게는 ‘사미인곡’, ‘관동별곡’, ‘성산별곡’ 등의 가사와 시조, 한시로 더 유명하다. 주옥같은 문구와 표현을 보며 그의 성격도 유하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서인(西人) 강경파를 대표했던 그는 임금과 상대 당으로부터 ‘동인백정’, ‘독철’, ‘간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냉혹하고 강직한 정치인이었다. 술을 무척 좋아하다 보니 말실수가 잦았다. 표현도 에둘러 하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기질은 많은 정적을 만들었고, 관직생활도 굴곡지게 했다. ‘말’ 때문에 귀양 가 있던 그는 임진왜란 발발 후 잠시 임금의 부름을 받았다가 얼마 뒤 강화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다언삭궁(多言數窮). ‘말이 많으면 자주 궁색해진다’는 뜻으로 도덕경에 나온다. ‘입은 모든 화의 문’이라는 의미의 구화지문(口禍之門)과 함께 만고불변의 진리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격언이나 성어, 속담들 중 아마도 말과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많을 것이다. 모두 말의 ‘많음’과 ‘막됨’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길에서 들은 얘기를 그 길에서 뱉어내는 입의 가벼움(道聽塗說)’을 질타한 공자는 "교묘한 말은 덕을 혼란스럽게 만든다(巧言德亂)"고 일갈한 뒤 "말은 뜻을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辭達而己矣)"라고 정의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은 "말이 아무리 훌륭해도 실행되지 않는다면 말을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言工無施 不若無言)"며 허언이 난무하는 당시 세태를 비판했다. 우리 속담에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말도 있다.

위 사례들을 통해 사람 사이의 건강한 관계를 해치고 사회의 조화를 깨트리는 부적절한 말의 폐해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어떤가. 그야말로 말의 홍수 시대다. 말을 안 하면 못 견디겠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사회생활 공간이건 가상 공간이건 가리지 않고 말을 쏟아낸다. 문제는 그 말의 대부분이 남을 헐뜯고, 비하하고, 무시하고, 공격하고, 때로는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자책이나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글쓴이는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책임은 정치에 있다고 본다. 본회의, 상임위원회, 청문회, 국정감사 등 TV 화면을 통해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막말들이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생중계된다. 얼마나 훌륭한 교사들인가? 현대의 전파 속도는 옛날의 사불급설(駟不及舌)에 비할 바 아니다. 사회 각 분야, 계층에 말(馬)이 아니라 빛의 속도로 퍼진다. 그 빠름만큼 ‘예의’와 ‘장유유서’는 책 속으로 꼭꼭 숨어든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너나 없이 무책임하게 내뱉는 말이라는 칼날이 지금도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조각조각 찢어 놓고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았다’는 예전의 겸양과 절제의 미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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