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 논설위원
이인수 논설위원

“山不厭高(산불염고) 海不厭深(해불염심) 周公吐哺(주공토포) 天下歸心(천하귀심).” 정세가 극도로 어지러웠던 후한 말기 조조(曺操)가 지은 4언시 ‘단가행(短歌行)'의 마지막 구다. 천하통일을 위한 인재 등용의 갈망과 정치적 야망이 물씬 묻어나는 시다.

나라의 경영과 회사 운영, 조직을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용인(用人)이다. 능력 있는 인재를 구해 적재적소에 쓰는 것이다. 나라의 흥기, 회사의 발전, 조직의 융성이 결국은 사람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 ’난세의 영웅‘ 조조는 용인술의 최고 달인으로 꼽힌다.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인재를 발굴해 알맞은 자리에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의 인재관과 용인술은 1천8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한 고조 유방(劉邦), 촉한의 선주 유비(劉備)도 이에 버금간다. 발군의 리더십 아래 인재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대업을 이루거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우리나라 고구려 9대 임금 고국천제는 농사를 짓고 있던 을파소(乙巴素)를 발탁했다. 귀족과 관료 등 기득권 세력의 격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국상(國相)이라는 중임을 맡겨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던 환곡제도(진대법)를 비롯해 수많은 개혁을 추진했다.

이러한 리더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인재를 구하기 위해 한없이 열린 마음과 낮은 자세로 임하며 어떠한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널리, 두루 주변의 의견을 구했다. 가급적 독단적인 결정을 하지 않았다. 조조의 구현령(求賢令),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인재를 향한 그들의 자세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김영덕 인천문화재단 대표가 지난주 갑작스레 사퇴했다. 능력 부족의 통감? 사고나 비리 연루? 인사권자나 그 측근의 압력? 임기를 절반이나 남겨 놓은 시점에서 ‘일신상의 이유’를 내세운 물러남의 배경에 추측이 무성했다. 지난해 임명 때 지역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주류였다. 그럴 만했다. 인천과의 연고도, 인지도와도 거리가 멀었다. 정치권, 당시 여당 중진과의 연계설이 흘렀다. 어떤 배경에서, 어떤 경로로 인천문화재단 대표로까지 왔는지, 결국 궁금증으로 남았다.

사실 얼마 전부터 그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재임 기간 중 무엇을 이뤄 놓았는지 딱히 기억될 만한 일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인천문화재단은 앞서 최진용, 이종구 대표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정치적이든, 능력 탓이든 중도 사퇴가 관행이 된 듯해 입맛이 씁쓰레하다.

인천경실련은 최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윤원석 청장 취임 이후 투자유치 등 실적과 최근의 성과 부풀리기, 국외 출장 시 과도한 항공료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기관장이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요청 대상이 됐다는 것 자체가 모양새는 썩 좋지 않다.

그는 취임 1주년을 맞아 지난 2월 송도국제도시 한 주민 커뮤니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설문에 참여한 1천 명의 주민 가운데 95%가 같은 생각이었다. 그의 조직 운영 방식을 놓고도 ‘특정 직급 패싱’ 등 말들이 나온 지 오래다. 남은 임기가 그리 순탄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윤 청장은 김영덕 전 대표와 비슷한 시기에 취임했다. 그의 선임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을 때 지역 분위기 역시 김 전 대표와 대동소이했다. 같은 맥락에서였다.

많아야 몇 사람 외에 인천에서는 거의 몰랐던,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이뤄진 인사(人事)가 실패로 귀착되는 모양새다. 인천경제청과 인천문화재단은 관련 정책의 수부(首部) 기관이다. 300만 시민을 위해, 인천시를 위해 참 안타까운 일이 정권을 넘나들며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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