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이의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 본격 운영과 함께 수업량 적정화로 생기는 학생들의 공강시간을 비어(空) 있는 시간이 아닌 성장을 위한 채움의 시간으로 전환하는 ‘학교주도 활동 시간(School Led Activity Time)’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초·중학교 학교자율시간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수학점이 192학점으로 줄어들고 1학점 수업량이 16회로 변경되면서 생기는 시간들을 말한다. 개별 학생의 진로와 적성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활동 시간으로, 전문적 준비와 체계적인 운영,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정착에 힘쓴다.
이의고는 신학년 교육과정 수립 단계에서 ‘배려와 열정을 갖춘 실력 있는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목표를 바탕으로 교직원 연수 및 회의를 통해 학생들의 성장을 위한 채움의 시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학생들의 진로 희망 분야를 반영하는 SLAT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자 했다.
그 결과, 인문국제와 융합과학 두 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한 트랙형 프로그램과 학생 주도 문제 해결 프로젝트 형식으로 한 학년 단위 프로그램이 중점 프로그램으로 설계됐다.
이의고는 학교주도 활동 시간을 일회성 활동이 아닌 학기·학년 단위로 연계되는 심화형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학생 역량을 진로·적성을 중심으로 다각도로 발전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
올해 1학기에는 인문국제 트랙의 국제 교류 프로그램, 융합과학 트랙의 학생 주도형 학술 및 체험 프로그램, 1학년 전체 학생 대상의 학생 주도형 문제 해결 프로젝트 등 다양한 SLAT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 국제 소통 역량을 키우는 학교주도 활동 시간(SLAT)
인문국제 트랙의 국제 교류 프로그램은 고교생 온라인 국제회의와 일본 국제 교류 활동의 두 가지로 운영하고 있다.
고교생 온라인 국제회의는 참가 희망 학생 선발, 주제별 자료조사 및 발표 준비를 거쳐 SLAT 시간을 활용해 1학기 내내 운영됐다. 참가 학생들은 국제 이슈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외국 학생들과 협업을 통해 소통 역량을 길렀다.
일본 고베시 후키아이고등학교 주최로 열린 회의에는 영국·캐나다·독일 등 8개국 학생들이 참여해 교육, 환경, 인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이의고 대표팀은 ‘스마트 농업’, ‘성소수자의 일자리 문제’, ‘소셜미디어의 정치적 영향’이라는 주제를 한국 대표로 발표하고 토론했다.
일본 국제 교류 활동은 도쿄시 가쓰시카종합고등학교와의 친선 교육 프로그램으로, 1학기 중 온라인 일본어 수업 교류 및 일본 방문 지역탐구 프로젝트 활동을 진행했다.
9월에는 일본 학생들이 이의고를 방문, 10월에는 일본 학교 연수 및 교류활동이 이뤄질 예정이다.
# 탐구와 실천이 연결되는 학교주도 활동 시간
융합과학 트랙에서는 학생들의 과학적 탐구력과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학술 및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자유주제발표 학술회’는 과학도서와 인물을 주제로 한 토론 중심 프로그램으로, 학교주도 활동 시간을 활용해 3월부터 5월까지 진행됐다.
참가 학생들은 ‘칩 워’, ‘디스플레이 공학 핸드북’ 등 전문 도서를 바탕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술 발전과 사회적 영향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자기주도학습과 의사소통 역량을 높였다.
‘심화집중탐구 학술회’는 ‘약물 제형의 화학적 특성’, ‘카오스 이론과 삼체 문제’ 등 고차원적 주제를 바탕으로 3월 중순 주제탐색 회의에서 7월 중순 융합과학콘서트를 통한 주제 발표까지 SLAT 시간을 활용한 장기 프로젝트로 운영됐다.
이 활동은 SLAT의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프로그램형 운영을 보여 주는 대표 사례로, 학술적 깊이와 함께 협업적 문제 해결 역량을 함께 기를 수 있었다.
환경의식 함양을 위한 ‘환경공감 프로그램’ 또한 SLAT 시간을 통해 운영했다. 지속가능 과학 주제의 외부 전문가 강연, 클래식 음악과 환경 실천을 접목한 ‘환경공감 콘서트’, ‘환경공감 정원’을 통한 식물 생장 관리 및 생태환경 탐구 실천과 사례 발표를 통해 학생들은 감각적 경험과 과학적 사고를 함께하며 환경문제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키웠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융합과학 브리저’라는 학생 활동 지원단 주도로 기획·운영됐으며, 2학기에는 전교생 대상 ‘환경 체인지 메이커 프로그램’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 비저너리 프로그램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비저너리 프로그램’은 1학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학교주도 활동 시간과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3∼7월 단계별로 실시했으며, 학생들이 일상 속 문제를 발견하고 창의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함양하도록 했다.
먼저 각 학급에서 프로젝트 팀장을 선발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운영 방식에 대한 교육을 했다. 이후 학생들은 팀별로 주제를 선정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을 거쳐 학기 말 집중적인 결과물 제작 및 공유 시간을 보냈다.
이번 학기 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그림 치료, 학교 자판기 음료의 건강성 개선 방안, 간접흡연 문제 해결을 위한 흡연구역 지도 제작 등 실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함께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며 협업의 가치를 깨달았다.
학교는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욱 발전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일부 우수 주제를 학생 제안형 프로젝트로 심화 연계해 2학기 학교주도 활동 시간에 운영할 예정이다.
# 강경호 이의고등학교 교장 인터뷰
강경호 교장은 고교학점제에 대해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 배우며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는 중요한 교육제도”라고 설명했다.
강 교장은 “이의고는 이 제도를 실현하기 위한 일환으로 학교주도 활동 시간(SLAT)을 특색 있게 운영하고 있다”며 “공강 시간을 단순한 자율학습이나 휴식이 아닌 학생의 성장을 위한 교육적 시간으로 활용하자는 방향을 바탕으로 계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의고에 고교학점제가 본격 도입되면서 이 시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교직원들의 부담도 커졌다. 특히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에 이의고는 교직원들의 전문성을 살려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했고, 학생들은 적극 참여로 화답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했다.
강 교장은 “학부모님들께서도 학교의 방향을 믿고 적극 지지해 주신 덕분에 훨씬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며 “‘환경공감 프로그램’, ‘비저너리 프로젝트’처럼 학생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함께 실천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학교의 교육이 진짜 의미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겨레를 이롭게, 세계를 의롭게’라는 학교 비전에 걸맞게 SLAT 활동 중 국제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일본·독일·캐나다 등 각국 학생들과 토론하며 글로벌 시야와 문화적 다양성을 넓혔다.
강 교장은 “앞으로도 학교주도 활동 시간 운영처럼 모든 교육활동을 단발적인 이벤트가 아닌 지속가능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구성원들과 함께 끊임없이 숙의하고 적용한 후 평가를 통해 보완해 나갈 것”이라며 “이의고가 한 걸음 더 성장하고, 나아가 미래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본보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강우 기자 kkw@kihoilbo.co.kr
<사진=수원 이의고등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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