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인천의 ‘명동’이라 불렸던 중구 신포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 개항기에는 일본과 서양에서 들여온 온갖 ‘잡화’로 성시(盛市)를 이뤘던 곳이다. 지금은 인천의 ‘패션 일번지’라 불리는 문화의거리가 조성돼 있다.

 신포시장을 둘러싼 서민적인 선술집이 즐비해 ‘인천 하면 신포동!’이라 할 정도로 은성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80년대 시청과 지방경찰청 등 주요 기관이 잇따라 이곳을 떠나면서 신포동 전성시대는 끝나는 듯했다. 활기 넘치던 거리도 급격히 쇠락해 갔다.

  오래된 근대 건축물이 밀집해 있는 ‘신포로 27번길’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적조차 드물어 건장한 청년도 밤에 혼자 걷기 무서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 경리단길이나 서촌 한옥마을처럼 특색 있는 거리로 다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수인선이 재개통되면서 신포역이 생기고, 내항 재개발에 따른 기대심리까지 더해져 신포동 상권이 활기를 되찾는 모습이다. 한때 공동화현상마저 우려됐던 신포동이 개성 넘치는 젊은 상인들과 꿈을 좇아 찾아온 문화·예술인들에 의해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

 하지만 거리가 활력을 되찾자 이들은 지금 애써 가꾼 둥지를 쫓겨날 것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지금 신포동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다시 주목받는 신포동에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글로벌 도시의 최대 ‘핫이슈’로 떠오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를 심층 취재했다.

 <글 싣는 순서>
 1. 프롤로그-신포동이 뜬다
 2. 브루클린에도 비상구는 없다
 3. 아티스트를 사랑한 몬트리올
 4. 쿠라시키 마을주식회사
 5. 서울 부산, 그리고 대구에도
 6. <에필로그>신포동에 산다.

# 그동안 신포동에선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168번지 일원 1.82㎢가 행정동으로서의 신포동이다. 26개 통과 119개 반이 있고, 2천994가구에 5천931명이 현재 거주하는 주민등록상 인구다. 이 같은 설명 없이도 신포동 하면 부산의 국제시장에 버금가는 신포시장이 있고, 일찌감치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신포닭강정과 신포만두가 있다. 나이 든 어른들에게는 요정이 즐비했던 용동(지금의 동인천역 부근)에서부터 선술집이 즐비했던 신포동까지 이어진 주막 골목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기생들에게 가무를 가르쳤던 권번(券番)이 위치해 있었을 정도였다니 당시 경성의 웬만한 유흥가 못지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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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는 신포동을 중심으로 동인천동과 북성동 일원 53만7천여㎡를 5년 전 ‘인천개항장 문화지구’로 지정 고시했다. 1883년 개항 당시 지어진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고,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성장 동력을 개발하겠다는 취지였다. 서울 인사동과 대학로, 파주 헤이리에 이어 국내 네 번째로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한 조세·금융 지원 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후 신포동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일제강점기 쓰던 오래된 적갈색 벽돌의 창고 건물이 예술인들을 위한 아틀리에(작업실)로 변모한 것이다.

2010년 인천문화재단이 사무실을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가난한 예술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오랫동안 비어 있던 점포에 하나둘 특색 있는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향토기업 선광이 일제강점기 지어진 오래된 근대 건축물을 미술관으로 새롭게 리모델링해 개관했다. 이듬해 젊은 건축가와 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스페이스 아도(ADO)’가 들어서고, 지역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며 지역민들과의 ‘만남의 장’을 만들고 있는 갤러리 ‘지오’가 문을 열었다. 인천지역 연극인들이 활동하는 소극장 ‘떼아뜨르 다락’과 향토 출판사 ‘다인아트’가 북카페 겸 갤러

리를 이곳으로 옮긴 것도 이때쯤이다. 문화지구 지정으로 낡은 건축물 개·보수에 최대 3천만 원의 보조금이 지원되는 데다, 오랜 기간 건물을 놀린 건물주 입장에서도 싼 임대료라도 받는 게 낫다는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다.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이 신포동에 둥지를 틀면서 지역 상권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포동 상권이 활력을 되찾자 시는 지난 6월 24일 중구청 앞 일본풍 거리에서 신포시장 입구까지 이어지는 ‘신포로 27번길’을 개항장 대표 거리로 만들겠다는 ‘관광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신포로를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이나 마포 연남동길처럼 특색 있는 거리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지구 지정에 이어 시가 내놓은 관광 활성화 방안이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최근 수인선 재개통으로 신포역이 들어서고, 내항 재개발에 따른 기대심리가 커지면서 부동산 시장은 거래는 줄고 임대료만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 초기 진행 형태라고 진단했다.

# 지금 신포동에선

카인즈(Kinds)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통해 ‘신포동’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인천’과 ‘명동’, ‘중구’, ‘차이나타운’ 등이 가장 많은 연관 이슈로 떠오른다. 그 다음으로 ‘예술인들’과 ‘사람들’, ‘문화공간’, ‘신포살롱’, ‘개항장’ 등이다. ‘그림’ 매체 등에 ‘신포동’이 언급된 것도 2006년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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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0년 131건으로 가장 많았다. ‘신포동’ 관련 뉴스 중 가장 많이 검색된 뉴스를 연도별로 분류해 보면 2005년도 이전 10년은 ‘상권 악화로 음식점들이 가격을 내리고 있다’거나 위조지폐가 발견되는 등 범죄 관련 뉴스가 많았다. 반면 최근 10년은 관광특구 지정과 신포시장 리모델링, ‘패션 1번가 조성’ 등 같은 긍정적인 뉴스가 검색 순위 상위에 링크됐다.

언론에 반영된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실제 신포동 상권은 최근 각종 지표에서도 급격히 회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천의 한 부동산 정보 사이트가 분석한 신포동 일대 상가 임대료는 지난해 1분기 ㎡당 1만1천800원에서 올해 1분기 1만2천900원으로 껑충 뛰었다. 투자 수익률 역시 같은 기간 0.9%에서 1.4%로 오른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제공하는 신포동 일대 상권 분석 상세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신포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반경 500m 내를 기준 상권인 ‘제1상권(지도)’으로 보고 분석한 결과, 3만1천416㎡에 전체 상가 수는 158곳, 이 중 음식점이 72곳이고, 다음으로 도·소매업이 30곳, 생활서비스업이 15곳 순이었다.

특히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음식점은 2013년 말 76곳에 달했다가 이듬해 71곳, 전년도 49곳으로 줄었다가 올해 상반기 72곳으로 다시 늘어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반면 전체 상가 수는 같은 기간 34곳이 늘었고, 이 중 편의점 등 소매업을 하는 프랜차이즈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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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17곳, 인테리어 시공 같은 생활서비스와 관광업소 등이 각각 4곳 등의 순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한국감정원 자료를 인용한 임대료 시세에서도 지상 1층 상가 ㎡당 월평균 임대료는 2014년 12월 기준 1만9천335원에서 2015년 9월 기준 1만9천625원으로 290원 올랐다. 중구 전체 평균은 같은 기간 1만5천172원에서 1만5천336원으로 164원, 인천시 전체 평균은 1만8천591원에서 1만8천859원으로 268원 오른 것으로 나타나 모두 평균치를 웃돌았다. 반면 인천의 주요 상권인 구월, 간석과 부평, 주안 등과 비교할 때 신포동의 소규모 매장 공실률은 지난해 2분기 6.5%에서 같은 해 4분기 14.7%로 치솟아 여전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뜨는 동네, 신포동

지난 6월 29일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인천문화재단 주최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리의 자세’란 주제를 갖고 작은 포럼이 진행됐다. 포럼에는 지역 언론과 경제인, 건축전문가 등이 발제를 맡고, 주로 신포동을 삶의 근거지로 하는 문화·예술인과 상인들이 패널로 참석했다. 포럼에 참석한 김지연(43)씨는 올 봄 건물주가 임대료를 전년 대비 40% 올려 달라고 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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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전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털어 신포로 27번길에 옛 일본식 건물을 카페로 리모델링해 이제 좀 자리를 잡는 듯했는데, 사실상 자신의 건물에서 나가라는 통보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건물주에게 사정사정해 임대료는 20% 정도 인상해 주기로 했지만 2년 후 가게를 비워 주겠다는 약속도 해야 했다고 한다.

신포동에서 30년 넘게 부동산중개업을 해 오고 있는 차오규(85·장승백이부동산)씨는 "신포동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여러 호재가 맞물려 있는데다, 때마침 상권도 되살아나고 있어 앞으로 2~3년 사이 상가 임대료는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차 씨에 따르면 불과 2년 전 3.3㎡당 평균 1천만 원 이하였던 상가 건물이 지금은 1천200만~1천300만 원을 호가하지만 이마저도 건물을 팔려고 내놓은 건물주가 없는 상황이다. 상권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건물 공실률이 줄지 않는 건 세입자를 받지 않고 건물을 통째로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한 것이란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서울의 기획부동산 업자가 들어와 신포동 일대 건물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놓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들 기획부동산 업자는 건물주에게 실거래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건물을 사고판 것처럼 계약서에 금액을 부풀려 작성하게 한 뒤 세입자에게 비싼 임대료를 물리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앞서 포럼에 참가한 전문가들 역시 신포동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은 현재 진행형이며, 문제는 ‘속도’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에 누가 먼저 대응할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코 개인이 대응할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함께하는 인천 사람들’의 김하운 대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큰 문제는 무엇보다도 지역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영세 상인의 불합리한 이전에 의한 사회 문제화가 대두됨과 동시에, 거시적 관점으로 보면 도시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죄다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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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트리피케이션이 뭐야 -‘신사화’ 아닌 ‘둥지 내몰림’

 ‘젠트리피케이션’을 직역하면 ‘신사화(紳士化)’란 뜻이다. 하지만 올해 초 국립국어원은 ‘둥지 내몰림’으로 정의했다. 치솟는 상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는 젊은 상인과 가난한 예술인을 연상케 한다.

 그동안 국내 언론은 서울 홍대와 합정, 서촌, 경리단길 등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대표적인 예로 소개했다. 낙후된 지역에 젊고 가난한 예술인과 상인들이 찾아와 생기를 불어넣자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상권이 되살아나자 다시 임대료가 치솟으며 수년간 그곳을 일궈 왔던 이들이 다시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떠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흔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 정도로 봤다.

 그러나 최근 잘나가던 이대 앞 상권이 하루아침에 붕괴돼 공동화현상이 일어나고, 차별성 없는 홍대 앞거리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결국 신포동 역시 개성 넘치는 젊은 상인들과 가난한 예술인들이 열심히 일해 상권을 회복시킨 대가로 다시 거리로 내몰리는 서글픈 현상이 재현될 것이란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 정의에 반한다 해도 당장은 ‘부동산 가격 상승’이란 달콤한 열매를 건물주만이 독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지면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지건태 기자 jus216@kihoilbo.co.kr
사진=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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