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걸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남동걸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인천시 미추홀구 학익동(鶴翼洞)은 문학산 한 줄기인 연경산 아래에 소재한다. 연경산은 멀리서 보면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을 띠고 있어 학익산이라고도 하는데, 학익동이라는 지명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됐다. 학익동은 한때 학골, 핵굴 등으로 불리다가 광복 이후 학익동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이 학익동의 조선시대 지명은 제운리(霽雲里)였다. 

 학익동이 제운리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조선 숙종 때 학자 이세주(李世胄)선생과 관련 있다. 이세주 선생은 호가 제운(霽雲)이며, 본관은 부평이씨로 바로 학익동에서 태어났다. 제운 이세주 선생은 학덕이 뛰어나기로 이름난 인물이다. 뛰어난 학덕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생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아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게다가 제운 선생은 효성이 대단한 인물로 알려졌다. 제운 선생의 효성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일화가 설화화돼 전해진다.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났다. 선생이 여섯 살 때 외삼촌의 친구가 부친의 이름을 자신 앞에서 함부로 부르는 무례를 보고 울면서 그 자리를 나와 다시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는 자식 앞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금기시했기 때문으로, 후에 이를 들은 외삼촌의 친구가 크게 뉘우치고 사과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비바람에 상관치 않고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의원의 처방대로 백일 동안 참새를 잡아 드시게 해 학질을 앓은 어머니의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어머니의 방에는 자신이 항상 불을 지폈으며, 겨울에는 어머니의 잠옷을 미리 입어 따듯하게 한 뒤 입으시도록 했고, 여름에는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부채질을 해 드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고령의 어머니 병세가 위중해지자 밤에도 허리띠를 풀지 않고 간호하며, 심지어 어머니의 변을 맛보아 병세를 판별하면서까지 간호해 세상 사람들의 흠모와 감탄을 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는 또 늙어서 자식도 없이 일찍 과부가 된 누이동생을 위해 자기 집 옆에 거처를 마련해 주고 직접 돌보는 한편, 양자를 들여 친자식처럼 아끼고 가르치기도 하는 등 형제들에게도 지극한 사랑을 베풀었다고 한다. 

 이세주 선생의 이러한 학덕과 효행은 후세 사람들의 표본이 됐기에 이 마을에 사는 부평이씨들의 본관을 제운이씨라고까지 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관계로 선생이 태어난 마을 이름도 그의 호에서 따와 제운리로 명명됐다고 한다. 물론 설화처럼 선생의 유명세에서 빌려와 지명으로 명명됐는지, 아니면 원래 제운이라는 지명에서 선생의 호를 따왔는지 그 선후 관계를 자세히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선생의 탄생지였기에 제운리라는 명칭이 알려진 것은 분명하다. 현재 제운리라는 지명은 학익동으로 바뀌어 없어졌지만, 제운사거리라는 지명으로 남아 이세주 선생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충(忠)과 더불어 효(孝)와 열(烈)을 숭상해 왔다. 이는 충·효·열이 나라의 근간(根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최근에는 그 의미가 상당히 퇴색 또는 변모됐다. 특히 열은 과거와 달리 현재에는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는 시대가 변화됨에 따라 당연히 나타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충과 효의 의미도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변모됐다. 그러므로 현재는 이세주 선생과 같은 그런 효행을 요구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효를 숭상하는 가치까지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최근 패륜(悖倫)이라는 단어가 언론 기사에 자주 등장한다. 패륜이란 윤리를 거스르는 것을 의미한다. 즉, 패륜이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것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는 이 단어가 효와 관련한 단어로 많이 사용된다. 자식이 병든 부모를 버린다거나, 심지어 재산 등의 이유로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까지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사흘이 멀다 하고 이 단어가 언론 기사에 등장하는 것이다. 효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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