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국 인하대 교수
백승국 인하대 교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대작 ‘이미지의 배반’에 등장하는 유명한 경구이다. 

그림 속 파이프는 실제 존재하는 파이프를 모방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물의 의미를 재해석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람들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문구로 의미 부여와 해석을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작품을 해석하는 의미 부여가 혼란스러운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액자 속 그림을 감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의 관점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감상자가 바라보는 방식과 관점을 확장하는 이미지 감상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미지 리터러시(literacy, 문해력) 능력을 터득할 수 있다.

최근 만화 이미지로 풍자한 ‘윤석열차’로 인해 사람들이 해석의 혼란에 빠졌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패러디 관점과 정치적 사상이 개입한 프로파간다라는 관점이 팽팽하게 맞선다. 풍자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전문가의 이미지 비평은 거추장스러운 절차이고 시간 낭비다. 좌우로 갈라선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사상에 따라 풍자 이미지를 해석하고 있다.

‘윤석열차’는 인지부조화에 과몰입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적 성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상징적 이미지다. 인지부조화는 자신이 선택한 신념, 사상, 이데올로기를 추종하고 맹신하는 자기합리화의 심리적 장치다. 자신의 해석이 잘못된 것이고, 상식에 맞지 않는 억지임을 발견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한다.

‘윤석열차’를 감상한 사람들의 반응에는 미학적 관점의 의미 분석은 사라지고 오로지 사상과 이데올로기 관점만 남아있다. 결국 똑같은 이미지를 바라보지만 좌우로 갈라선 사람들의 해석 잣대와 함께 인지부조화의 정치적 신념으로 분열되고 있다.

이미지의 이분법적 관점과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용미학의 심미안이 필요하다. 수용미학은 이미지를 제작한 작가의 의도와 관점에서 벗어나 이미지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자유도가 높은 감상 방법이다. 

사진, 포스터, 광고 이미지의 상징기호를 해석한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이미지의 수사학적 분석」에서 작가의 의도를 배제하고 이미지의 명시적 의미와 숨겨진 함축적 의미를 해독하는 방법론을 제안한다. 그리고 프랑스 잡지 ‘파리마치’의 표지 모델에 게재된 흑인 병사가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는 이미지를 분석했다. 명시적 의미 차원에서 사진의 이미지는 인종과 출신을 떠나 국가에 충성하는 모습이지만, 함축적 의미 차원에서 기득권인 부르주아지 계층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선동 이미지라고 분석했다. 롤랑 바르트의 이미지 분석은 작품의 심층 구조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와 신화를 해체하는 감상 기법을 제안한다.

‘윤석열차’를 롤랑 바르트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정치를 풍자한 패러디라는 이미지의 명시적 의미를 즉각적으로 도출할 수 있다. 

반면 이미지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과 기차를 보고 피하는 아이들의 제스처는 이미지에 숨겨진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좌파 이데올로기 관점에서는 풍자와 패러디이고, 우파 이데올로기 관점에서는 표절과 프로프간다다. 이미지 배치와 구조가 영국 작가의 정치 풍자 만화와 유사하다는 주장이다. 

분명한 것은 이미지 표절과 패러디는 문화예술의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엄격하게 평가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표절과 패러디를 식별하지 못하면 이미지의 예술적 상상력은 사라지고, 모방과 카피의 시뮬라크르 이미지만 남게 될 것이다. 독특하고 차별화된 이미지의 IP(지식재산권) 확보는 표절과 패러디를 구분하는 수용미학에서 출발한다. 

또한 ‘이것은 윤석열차가 아니다!’라는 르네 마그리트의 오마주(homage) 제목을 달았다면 정치적 관점의 이분법적 해석을 넘어 수용미학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조금 아쉽다는 상념이 머리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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