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믿기지 않는 일이다. 지난 주말 이태원 압사 참사로 31일 오전 기준 154명이 숨지고 149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례 없는 대참사다. 외국인 26명을 포함해 대부분 20∼30대 꽃다운 청년들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강제로’ 등졌다. 경기도민 38명도 희생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들뜬 마음으로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나간 청춘들이다. 그 중엔 10대 학생들도 포함됐단 소식이 가뜩이나 주체 안 되는 마음을 더욱 옥죈다.

좁은 골목길에 삽시간에 몰려든 군중에다 내리막이라는 구조상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인명피해가 컸다. 주체 없는 행사에 비명을 지르는 피해자나 이를 돕는 시민, 구조대원을 핼러윈 행사의 한 부분으로 착각한 상황도 화를 키웠다.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엄청난 인파에 묻혀 빠른 대처가 쉽지 않았다는 점도 피해를 늘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5일까지 국가 애도기간으로 지정했고, 정부는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정치권과 유명인들도 애도 물결에 속속 동참한다.

압사 사고는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이라크, 캄보디아 들에서 발생한 후진국형 참사의 전형이다. 군중심리에 개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통제 안 되(하)는, 무절제한 시민의식이 얽히고설켜 일어나는 사고다. 모든 이들이 황망하고, 참담하고, 무참하다고 말하는 까닭도 이 때문일 터다. 더욱이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사전에 대처 못한 지자체와 경찰의 대응도 참사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혐오 발언이나 확인되지 않은 추측, 무분별한 영상 유포로 2차 피해를 가하는 사회문제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참사가 더 안타까운 이유다. 자식을 잃고 슬픔에 빠진 부모, 소중한 친구를 잃은 사람, 이들을 구하러 달려 나간 구조대원과 경찰, 시민 영웅들, 마음 졸이며 사고영상을 봤던 국민 대다수가 트라우마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참사 수습도 중요하지만 전 국민이 나서 유가족을 비롯해 피해자를 위로하고 심리 지원 같은 사후 대처에 관심을 기울이자. 사고는 후진국형이었을망정 사후 수습은 선진국형이길 간절히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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