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외로울 때 시를 읽으라"는 말은 어느 30대 초반 이혼모가 어린 딸에게 남긴 유언이다. 홀로 살아보려 애쓰다가 지난 5월 숨을 거둔 그녀의 정리된 유품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얼마 전 주요 일간신문의 청년 고독사를 다룬 기사에서 따왔다. 명색이 시인이라 불리는 내가 그 말 앞에서 눈물이 앞을 가려 몇 번이고 가삐 긴 한숨을 쉬었다. 과연 나의 졸음 시들 중 외로움을 달래 주고 죽어가는 생명을 구할 작품이 있었던가. 70년 철의 장막 소련체제를 벗어던진 고르바초프도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했다. 부디 그 따님은 좋은 시를 읽고 건실한 성년이 돼 엄마가 못다 한 인생까지 잘 살아주기를 바란다. 이제부터라도 더 웅숭깊게 순정과 사랑의 시를 노래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고독사는 ‘무연고 상태에서 홀로 죽어가는 것’이다. 특히 출산율 관련, 청년 고독사는 우리나라 인구정책상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른바 한류문화가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반면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수위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 원인 중 20∼30대 청년 자살률이 41~57%에 이를 만큼 높았다. 그 원인은 인간관계의 단절에다 경제적 어려움이라 한다. 지난 수년간 코로나 정국으로 인한 사회 단절과 이즈음의 가파른 이자 부담으로 청년들의 고통은 극심할 것이다. 

지금 주변 상황은 온통 아노미 상태다. 국제 정세는 러·우 전쟁, 미·중 간 대립 등 신냉전 상태로 불안하다. 국내 여야 정쟁은 역겹다. 자질 미흡한 국회의원, 말썽 많은 선거행정, 불신의 대법관에다가 세상은 온통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듯하다. 게다가 이념 논쟁까지 뒤범벅돼 연일 언론을 달군다. 자유·양심·진리·도덕·정의 같은 보편적 사회규범이나 가치관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60대의 나도 이럴진대, 자식세대들의 아노미는 더할 나위 없겠다. 

가치관의 혼돈 상태, 경제난과 인간 소외로 인한 청년들의 극단 선택은 단순한 ‘고독사’(孤獨死)라 할 수 없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이 말한 ‘절망사(絶望死)’를 넘어선다. 이 사회가 사지로 몰아친 청년들의 죽음은 ‘고립사(孤立死)’다. 공수래공수거 인생사라지만 이것은 아니다.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세상을 잘 일구다 가게 해야 한다.

작금년 한국 인구문제에 관한 소식을 접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암울하다. 10월 20일 통계청 발표 ‘장래 가구 추계’상 2050년에는 줄어든 인구에 10가구 중 6가구는 아이가 없다고 한다. 또한 UN의 ‘세계인구 전망 2022’에는 한국의 고령화율이 현재 17.5%에서 2046년 37.3%가 돼 일본(36.9%)을 넘어 세계 1위로 올라선다는 것이다. 물론 장래 고령화율이 세계 최고라 해 꼭 나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위안해 본다. 출산율을 점점 올린다고 전제할 경우다. 고령화율이 그보다 더 빨리 오른다면 멋진 장수시대 대동사회가 먼저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 2분기 출산율은 사상 최저치인 0.75명 수준이다. 신생아 수는 2016년부터 내리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장래 예측은 어둡다. 10월 14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나경원 부위원장이 임명됐다. 20대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장을 맡는 등 인구문제를 잘 아는 분인 만큼 실천이 앞서기를 주문한다. 기구 출범 후 17년간 200조∼300조 원의 국민 혈세만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동안 국내외 관련 연구보고 자료는 엄청날 것이다. 속히 대책을 가려 뽑아 실행해야 한다. 이 중에서도 1997년 시작해 올해 25년이 되도록 한결같이 운영되는 순수 민간 전문단체 ㈔한국출산장려협회(이사장 박희준)가 있다. 피부에 와 닿는 그 단체의 연구자료를 반영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이제 ‘청년층 채무 탕감 조치’의 강력 시행으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한다. 일본처럼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느닷없이 이태원 압사 사고를 당한 꽃띠 청년들의 고혼이 섧다. 청년이 살아나야 미래 한국이 보다 희망스럽다. 시조로 더한다.

- 꽃 청춘 - 

이 세상 태어날 때
아니 귀한 목숨 없다

 

볕뉘에 물 잘 주어
오만 꽃이 활짝 피듯

 

눈물을
삼켜 쟁여야
시로도 필 꽃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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