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섭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변성섭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11월 11일은 ‘농업인의날’이다. 제정된 연유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장 개방이 급물살을 타고 우리 농업의 생존전략을 국가적 과제로 고민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하루쯤 농업인의 노고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갖자는 데 국민적 공감대 형성으로 제정된 기념일이다. 

 하지만 요즘 세태는 농업인의날이 어떤 날인지 명확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이날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빼빼로 데이라고 하며, 농업인의날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십일(十一)월 십일(十一)일’은 ‘흙 토(土)’자가 두 개 있어 농업인의날이라는 철학적 설명이 긴 막대기가 두 개씩 있는 날로 막대기처럼 생긴 과자를 선물해야 한다는 상업적 상술에 밀리고 있다.

 ‘농업인의날’이 제정된 지도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농업인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그동안 공산품 및 농업 관련 원자재 가격은 모두 올랐다. 공산품 특성은 원재룟값이 오르면 제품 가격은 줄줄이 인상된다. 생산자가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반면 농산물 가격은 복잡한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된다. 농업인 단독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 없다. 정부의 정책과 시장의 수요·공급 등 논리에 의해 들쑥날쑥 요동치고 있다. 풍작이면 풍작인 대로, 흉작이면 흉작인 대로 항상 이슈가 되는 것이 농산물 가격이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자료에 따르면 비료, 농약 등 농자재 가격 및 경영비는 전년 대비 평균 19% 정도 올랐지만 산지 전국 평균 쌀값은 4만768원(20㎏) 수준으로 전년 대비 24.9%, 평년 대비 12.3% 하락했다.

 주원인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 수입물량, 2021년산 재고 쌀, 햅쌀 출하까지 가세하면서 공급량이 폭증했으며,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56.9㎏으로 10년 대비 20.1%로 계속해서 감소했기 때문이다. 모든 재화의 가격이 인상됐지만 쌀값만 하락한 것이다. 급기야 정부는 벼 수확기 중 공공비축미 45만t 추가 매입을 발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3년도 ‘농림축산식품 예산 및 기금안’을 들여다보면 17조2천785억 원으로 국가 전체 예산 639조 원 대비 2.7%로 올해보다 0.1%p 줄어든 상황이다. 이에 농업인단체는 농업 생산 여건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농업예산 비중을 감소해서는 안 되며 경영이양직불, 전략작물직불 등 9대 농식품 핵심 사업의 예산 증액 필요성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국내외 농업 환경은 녹록지 않다. 국제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격화에 따라 국제 곡물 가격의 불안정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국내적으로는 농업인구의 지속적 감소와 고령화,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폭풍 피해 증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발효 및 대외개방 확대 등으로 사면초가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농업·농촌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맞이하는 올해 27회째 농업인의날은 의미가 크다. 일부 지역별로 농업인과 농업 관련 단체만의 행사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 과거 경제개발과 최근 세계경제 10위라는 명성은 농업·농촌이 밑바탕이 됐다. 또한 향후 우리 사회의 지속적 발전의 원동력은 농업에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농업인의날 행사를 국민과 함께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해 국민적 공론화를 통해 농업인의날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2003년부터 시작된 농촌사랑운동은 범국민 운동으로 정착됐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발표한 ‘2021 농업·농촌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국가경제에서 ‘농업이 앞으로 중요하다’는 인식 비율에 있어서 농업인과 도시민의 80% 이상이 국가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위상이 중요해질 것으로 답했다. 이는 법정 공휴일 지정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2008년 제정된 ‘도농교류촉진법’에 따른 농어촌 체험과 교류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법정 공휴일 제정이 선행돼야 한다. 농업·농촌의 문제는 정부나 농업인들만의 일이 아니다. 생명 창고인 농업·농촌을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무다.

 11월 11일 농업인의날! 아무쪼록 이날만큼은 국민 모두가 정체불명의 빼빼로 대신 우리 농산물인 사과, 배, 고구마 등을 함께 먹으면서 농업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서로의 정을 나누며, 농산물 가격 하락과 시장 개방의 거센 파고 속에서 땀 흘리는 농업인들과 애환을 함께하는 날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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