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객원논설위원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객원논설위원

‘고르비’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애칭이다. 올해 8월 30일 돌아가셨다. 

 신문마다 커다랗게 실린 그의 생전 모습을 보면서 유독 눈길이 머무는 곳은 이마에 그려진 ‘반점’이었다. 반 대머리인 그의 이마 오른쪽 윗부분에서 시작해 머리 중앙부와 우측 눈썹 바로 위에까지 점점이 이르는 모양은 여간 예사롭지 않았다.

 1980년대 그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지구촌 통치를 좌지우지하던 양 당사자라 할 수 있다. 인류애를 향한 형형한 눈빛이나 선량한 얼굴이 전부가 아니다. 

 생소한 러시아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가 그를 대신하는 유행어였다.

 호감 가는 얼굴에 생긴 그 ‘반점’이 임종한 이즈음에까지 세상에 알리려는 건 무엇일까.

 이른바 우리는 반만 년 역사에 빛나는 민족이라고 들어왔다. 바로 그 유서 깊은 한민족 역사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우리나라 ‘강역(疆域)’의 모양과 흡사하니 말이다.

 올해 개천절은 4354주년이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하고 세운 나라가 ‘고조선’이며, 요임금과 같은 시대라고 한다. 

 「동국통감」에는 기원전 2333년에 단군조선이 개국됐다 하니 두 서적의 건국 시기가 맞아떨어진다. 단재 신채호는 기원전 2천 몇백 년간 지속된 나라라 한다.

 그 자랑스러운 고조선(뒤이은 부여 및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의 강역이 곧 고르비의 반점 모양과 매우 닮았다. 

 더구나 우측 눈썹 위로 내려온 작은 반점들은 마치 중국 동남해안 지방으로 진출했던 해양강국 대륙백제를 연상케 한다.

 올 7월 26일부터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에서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이 열렸다. ‘한국 고대 역사 연표’에 들어있던 ‘고구려’와 ‘발해’를 빼 버린 채 전시돼 우리나라 중앙박물관 측의 뒤늦은 항의로 도중 철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역사는 그 민족의 영혼이랄진대, 국격 손상에다 겨레의 자긍심은 망가졌다. 이는 2002년 시작된 중국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그들은 우리의 고대국가들을 자국 역사로 편입해 왔다. 

 만리장성으로부터 동북방으로 현 중국 3성(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이 포함된 광대한 강역의 ‘고조선’은 물론 그 뒤를 이은 ‘고구려’와 ‘대진국(발해)’까지 말살하고 있다. 고조선의 실체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최태영·이병도 공저 「한국상고사입문」,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 등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이쯤에서 보다 객관적인 주장 사례로 이해 관련 국가를 배제한 제3의 국가를 상정해 본다. 러시아다. 고조선의 존재 자체를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중국이나 일본이 아니다.

 시베리아과학원의 고조선 전공자 유엠 부찐(Yu.M. Butin)이 그 연구자다. 고조선과 한국 고대사 관련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국가박사학위를 받았고, 러시아 3개 대학에 한국학과를 개설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헌신했다. 그는 고문헌과 비파형 동검 같은 고고학적 유물을 근거로 고조선의 존재를 실제 역사로 인정했다.

 1982년 러시아어로 출간된 그의 역작 「고조선」은 당시 한국 상고사에 불모지나 다름없던 사회주의권 관련 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강인욱 교수의 설명이다. 

 유사역사학이라며 멸시하는 감정적 주장은 거론할 가치가 없다. 위서(僞書)나 예사(穢史) 논란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홍산문화와 요하문명의 발굴 유물에서 보듯이 요즘은 일반에 공개된 실제 근거와 설득력 있는 논리로 말하는 것이다.

 예언가 탄허스님은 앞으로 한국은 걸출한 영웅이 나서 세계사를 주도하는 지구촌 중심 국가가 되며, 만주와 요동반도가 회복되고 서부 해안 쪽 영토가 늘어날 것이라 했다. 결국 미래에도 고르비 반점 모양의 국토를 회복하는 셈이다.

 6년간(1985∼1991)의 소련 대통령으로서 세계 인류사에 미친 고르비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자유·평화·통일·데탕트(냉전종식)의 화신이었다.

 1988년 소련의 서울 올림픽 참가와 한·소 수교 후 1991년 제주도 정상회담 모습이 스쳐 간다. 고르비도 부찐도 둘 다 1931년 농촌 출생 러시아인이다. 고르비의 반점은 상상만 해도 환희가 넘친다. 단시조로 찬한다.

-신표(信標) -

 ‘고르비’ 반점 터에

 ‘부찐’ 바람 불었으니

 

 헐린 장벽 베를린에

 노벨 평화상을 타고

 

 고조선

 다시 일어나

 지구촌을 이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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