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웅 변호사
한재웅 변호사

10·29 참사 직후 일부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태도에서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정제되지 않은 반응에서 본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참사를 극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반성하며 원인과 대책을 찾아야 하는데, 편을 나눠 다툼만 하려고 하니 결국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참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참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부터 반성해야 한다.

이태원에서 사고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일부 국민들은 이태원에 갔던 피해자들을 비난했다. 상당수 사람들이 이태원 핼러윈 파티를 근본 없는 해외 문화라고 하면서 소비, 향락, 퇴폐 문화의 상징처럼 백안시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스스로 위험을 자초했다고 비난했다. 전직 청와대 비서관은 "개인도 무한 책임"을 진다고 하면서 개인이 자유의지로 이태원에 갔으니 개인도 사고의 책임이 있다는 논조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근대화 이후 우리는 계속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우리 것으로 만들며 발전했기 때문에 해외 문화라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편, 나에게 익숙한 해외 문화는 긍정적인 것이고, 새로 들어온 해외 문화는 근본 없는 퇴폐 문화로 간주하는 건 지독히도 배타적인 태도다.

이태원에 갔던 사람들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 것도 아니다.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의무는 국가에 있기 때문에 핼러윈 파티에 갔던 사람은 국가를 신뢰해 안전할 것으로 믿고 이태원에 갔다고 봐야지, 사고를 무릅쓰고 놀러 나간 게 아니다. 만일 내가 아파트를 샀다면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부분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지만, 아파트가 법규를 준수해 안전하게 지어지는 걸 관리·감독할 책임은 국가에 있으므로 자유의지로 내가 샀어도 아파트가 부실공사로 무너져 버렸다면 그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국가와 개인은 책임의 영역이 다르고, 개인은 국가의 영역에서 국가를 믿을 수밖에 없다. 

"개인도 무한 책임"이라고 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분산하려는 태도는 개인보다는 국가를 우선하고 국가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측면에서 전체주의적이다.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잠시 나왔다는 것조차 우리 안에 감춰졌던 폭력성이 순간 드러났던 것은 아니었는지 우려스럽게 한다.

10·29 참사 후 국가기관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고, 앞서 말한 것과는 달리 무책임한 모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고 직후 정부기관에서 나온 이야기는 "주최 측이 없는 행사"였다는 것이다. 용산구청장은 같은 논리로 핼러윈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이 없다고 안전과 관련된 조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널리 보지 않고 행정주체의 입장에서만 말하는 관료적 태도가 드러난다. 

또 초기에 정부가 나서 참사와 관련된 용어를 ‘참사’와 ‘희생자’ 대신 ‘사고’와 ‘사망자’로 지정해 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경찰이 배치됐어도 사고를 미리 막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이나, 국민들의 이동권을 제한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의 경찰 측 목소리 역시 모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편 국회의원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데, 당일 진보 집회 때문에 경찰 배치가 어려웠다거나 대통령 관저에 배치돼 인력이 부족했다, 전 정권에서 의경을 없앤 것이 문제라는 등 서로 다른 진영 탓을 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어떻게 준비했어야 하는지, 제도적·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 찾으려는 정치인은 발견하기 어렵고 깊은 고민 없이 정쟁으로만 시간을 흘리고 있다.

다시는 경험해서는 안 되는 참사였다. 우리 모두 뒤돌아보고 좀 더 진지하게 반성해야 비극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정부는 좀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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