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전 인천문인협회장
김사연 전 인천문인협회장

화려한 봄꽃보다 단아한 빛깔의 단풍이 더 자랑스러운 계절이다. 가을이 위대한 것은 봄부터 한곳에 뿌리내린 후 땡볕과 크고 작은 태풍을 묵묵히 견뎌 낸 인고의 결실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봄엔 가뭄의 갈증이 목을 태웠고, 여름엔 기나긴 장마로 힘든 한 해였다. 해마다 지인들이 체험 잔치를 벌였던 매실나무 가지는 열매를 구경할 수 없었다. 식탁 위에 자리 잡고 쏠쏠하게 우리 부부의 입맛을 돋웠던 오이와 애호박은 이틀마다 지하수를 공급했지만 흉작이었다. 뒤늦게나마 농부의 체면을 겨우 살려준 건 장마 세례를 받은 참외와 토마토였다. 

농부에게 가장 힘든 작업은 잡초와의 전쟁이다. 그 다음은 억새처럼 쑥쑥 솟아오르는 매실나무 가지치기다. 봄부터 가을까지 초벌과 애벌을 거쳐 세 번이면 족했던 매실밭 벌초를 장마 탓으로 결국은 한 번 더 예초기를 돌린 후 호미씻이를 했다. 내게 호미씻이는 잡초 땟국물로 얼룩진 예초기를 닦고 조이고 윤활유를 친 후 카뷰레터 안의 연료를 엔진 공회전으로 소각시키는 것이다. 선산 나무 밑에 우비를 쓰고 누워 겨울잠을 준비하는 승차용 잔디깎이와 재실 안 예초기도 이 과정을 거쳤다. 

남촌 밭 한쪽엔 김장용 무와 배추가 마지막 잔치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채소 가격이 고공행진을 해 감나무 밑에 음식물쓰레기를 묻을 때마다 뽑아 온 무는 가을 상추와 더불어 아내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까치와 함께 성찬을 나누는 말랑말랑한 홍시도 파란 하늘 아래 빨간 등을 켠 채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오늘 활터 사계(射契)에 다녀오니 집 안에 막걸리 냄새가 진동한다. 평소 허리 병을 달고 다니면서도 증조부까지 기제사를 올리고 구정과 추석에는 학도병으로 산화한 삼촌부터 6대조 현조(玄祖)까지 모셔 온 아내가 가내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 것이다. 게다가 종친회장의 부인으로 손수 장을 봐 종친회 시향제를 치른 것이 며칠 전의 일이다. 어느 집안은 제삿날이면 며느리들이 불화를 일으킨다는데, 아내는 손아랫동서와 두 며느리의 일손을 기대조차 안 한다. 우리가 이렇게 부를 누리고 사는 것은 오로지 조상의 음덕이라며 고사상 앞에 수굿이 앉아 자분자분 잔을 올리는 아내의 마음씨가 갸륵하고 고맙다. 

아침 기상과 함께 각종 그림과 명언을 카톡으로 보내 주는 지인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영농일기 사진으로 답장을 올린다. 농사에 얽힌 재미있고 때로는 힘든 넋두리를 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감자알처럼 풀어놓는다. 며칠 전 그분이 카톡에 쏘아 올린 한마디가 불꽃놀이 파편처럼 팡팡 가슴을 때린다. "왜 힘들게 농사를 지어요? 사다 먹으면 되죠. 땅 팔아 편하게 사세요. 그리고 사회에 환원도 하시고요." 일 년에 한 번 조상에게 추모 예배를 올린다는 선배도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로또 복권이나 개발 정보 투기로 부를 축적했으리라 여겨 쉽게 그런 말을 했을까. 하긴 아들도 몸 아프다고 하지 말고 농지를 팔아 치우라고 후렴처럼 노래를 불렀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그 후 일부를 처분해 목돈을 안겨 주자 처분하란 지청구 대신 사람 사서 관리하라고 말을 바꿨다. 

할아버지는 땅 부자 소릴 들으면서도 농한기 점심은 밥 한 그릇을 가마솥에 끓여 온 가족이 나눠 먹도록 했다. 길가에 떨어진 못 한 개조차 주우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 역시 이면지를 버리지 못하는 근검절약이 몸에 배었다. 오래전, 지인들이 농사가 힘들다며 농토를 처분하거나 토지 보상금으로 호의호식할 때 우리는 오히려 돈을 보태 수용당한 평수를 채워 왔다. 해서 나로선 조상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힘들게 축적한 음덕을 덥석 처분할 용기가 아직은 없다. 거동할 수 있을 때까지 조상을 기리며 그저 가을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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