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금융시장이 미국발 훈풍으로 오랜만에 좋은 의미의 변동성 확대를 보여 줬다. 미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다는 낙관적 전망이 확산되며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고 증시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섣부른 감이 없진 않으나 24일 예정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조절될지 모른다는 희망 섞인 예측까지 나온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에겐 천운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물가를 포기(금리 인상 속도 조절)해야 한다"는 국책연구원의 제언이 나올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어서다.

물가와 경기는 양날의 검이다. 물가를 잡고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민간부채가 부실화되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다. 결국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실업이 증가하면서 양극화를 수반하는 경기 둔화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긴축기조를 포기하고 물가를 방치하면 더 큰 고통이 뒤따른다. 화폐가치 하락과 실질소득 감소, 투자자금이 유출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어떤 길을 택하든 고통이 따르고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럴 땐 순리대로 가는 게 장기적으로 플러스가 된다. 그러면 순리대로 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근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나라가 미국과 일본이다. 굳이 요약하면 미국은 급속한 긴축기조 전환, 일본은 완화적 기조 유지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둘 다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순 없다.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천연자원과 기초과학 인프라가 풍부한 나라도 아니다. 하지만 굳이 선택하자면 일본보다는 미국의 통화정책이 순리에 가깝지 않나 싶다. 경제 여건상 미국보다 고통이 훨씬 크겠지만 인플레이션에 우선 집중하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다만 명심해야 할 건 그(긴축의)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체되는 시간만큼 경제 충격과 피해 규모, 민생고가 가속적으로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고물가·고금리·고환율 구조는 단기간에 바뀌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간 진행된 기준금리 인상의 후유증이 너무나 크다. 현재로선 급격하게 커진 민간부채 부담과 자산시장 침체를 되돌릴 마땅한 수단이 없다. 교역 부문도 공급망 위기와 중국 시장 둔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비관론이 우세하다. 순리대로 신속하게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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