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2018년 7월 24일 새벽, 강릉에 사는 최모 씨 집 베란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에 놀라 잠이 깬 그는 ‘창문 틈으로 새가 들어왔나 보다’라는 생각으로 베란다로 나가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까만색 솜털을 가진 병아리가 있었습니다.

베란다에는 평소 자신이 키우던 닭들이 낳은 13개의 알을 모아둔 계란판이 있었는데, 그 알 중에서 하나가 부화한 것입니다. 

당시 강릉은 낮에는 35도 이상의 폭염이, 밤에는 25도가 넘는 열대야가 6일이나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병아리가 부화하려면 암탉의 품과 같은 35도 이상의 온도가 유지돼야 하는데, 우연히도 병아리가 부화하기 좋은 조건이 베란다에 형성됐던 겁니다. 까만 털을 가진 이 병아리에게 ‘깜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최 씨는 정성껏 키우겠다고 했습니다.

극심한 무더위라는 고통은 고통만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도 있으니까요. 고통스러울수록 깜순이를 떠올리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듯싶습니다.

지인이 보내준 글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글의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10대 자녀가 반항하면 그것은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내야 할 세금이 많다면 그것은 내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며, 파티가 끝난 후 치울 것이 많다면 그것은 친구들과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조금 낀다면 그것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닦아야 할 유리창과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차가 있다는 것이며,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것은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것은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것은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며,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온다면 그것은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순간은 ‘깜순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짜증이 날 수밖에 없게 만든 ‘너’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의 눈이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통이라고 여긴 상황을 조금만 달리 해석하면 이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그리고 그제야 내 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깜순이의 존재, 즉 기쁨을 보게됩니다. 마음 속에서 나도 모르게 수시로 마주치는 분노와 원망, 좌절과 불평불만들을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오히려 그런 일들이 감사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낮을 잃으면 밤이 보이고, 밤을 잃으면 낮이 보입니다. 해를 잃으면 별이 보이고, 별을 잃어야 해를 볼 수 있습니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별들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런 별들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밤이라는 어둠이 필요합니다. 

겨울이라는 어둠을 거쳐야 비로소 봄에 피는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고통을 상징하는 ‘어둠’은 실제로는 ‘기쁨’을 예고하는 어둠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그 고통을 외면하면 우리에게 언젠가 다가올 축복까지도 사라지고 맙니다. 

35℃ 이상의 폭염의 고통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깜순이의 존재도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깜순이의 소식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들이 스쳤습니다.

견디기 힘들 정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또 다른 곳에서는 깜순이가 태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지금의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 되어주지는 않을까?

고통이 휘몰아칠 때조차도 한쪽 구석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희망을 찾는 것, 이것이 삶의 지혜이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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