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늦가을 만추다. 만산홍엽(滿山紅葉), 온 산을 붉게 물들였던 가을 단풍철도 끝나간다. 그래도 주말과 휴일이면 유명 산마다 떠나가는 가을 뒷자락을 잡으려는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다. 간밤에 분 세찬 비바람이 가로수에 매달려 몸부림치던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트렸다. 

송대(宋代) 시인 진여의(陳與義)는 가는 세월을 붙잡으려 노래했다. "으스름한 달빛은 정원을 비추고, 흰 이슬 하늘을 씻어 내린 듯 은하수는 밝구나. 가을바람 불어 나뭇잎 모두 떨어트리지 말라. 가을 소리 낼 곳 없게 될까 두렵구나(中庭淡月照三更, 白露洗空河漢明 莫見西風吹葉盡 却愁無處著秋聲)."

요즘 가을 날씨는 종 잡을 수 없을 만큼 변덕을 부리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나 보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거세게 부는 가을바람에 초가지붕이 날아가 결딴나는 재난 상황을 시로 묘사하기도 했다. 

"가을 하늘 높은데 세찬 바람 불어, 내 집 지붕 세 겹 이엉을 말아 올렸네. 이엉은 날아가 강 건너 강가에 뿌려졌도다. 높게는 길게 뻗은 숲 나뭇가지 끝에 걸렸고, 낮게는 바람에 맞아 구르다가 웅덩이에 빠졌다오. … 자리마다 비가 새어 마른 자리 없는데, 빗줄기는 삼대처럼 내려 끊이지 않누나. 난리를 치른 뒤로 잠이 적어지는데, 기나긴 밤 축축히 젖은 자리에 누워 이 밤을 어찌 샐는지(八月秋高風怒號 卷我屋上三重茅 茅飛渡江灑江郊 高者掛견長林梢 下者飄轉沈塘요 … 牀牀屋漏無乾處 雨脚如麻未斷絶 自經喪亂少睡眠 長夜沾濕何由徹)."

이렇듯 예부터 가을을 노래한 시는 많다. 하나같이 이들 가을 노래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푸른 눈의 한 시인은 ‘가을날’이라는 제하(題下)에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읊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난 여름은 위대하기는커녕 잔인했다. 

역대급 홍수라 할 정도로 한여름 폭우가 쏟아져 국토를 망가트렸다. 도로가 파이고 끊기고 산마저 무너져 내렸다. 산자수려(山紫水麗)해야 할 산하(山河)는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삶의 보금자리인 주택들이 물에 잠기고, 축대가 무너지고, 생활 터전은 거덜이 났다. 많은 수재민을 낳았고 막대한 재산 손실을 가져왔다. 수마가 휩쓸고 간 지역마다 전쟁의 참혹함을 연상케 했다. 게다가 폭우를 동반한 가을태풍으로 수확기를 맞았던 농촌 들녘의 곡식이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논밭의 곡식을 거둬들였지만 피해 농민들의 시름은 채 가시지 않았다. 천재(天災)라 하지만 만약에 대비하지 못한 결과가 너무 크다. 

「서경(書經)」에 "일마다 갖춤이 있나니, 갖춤이 있어야 근심걱정이 없다(惟事事 乃其有備 有備無患)"고 했다. 우리가 주지하고 있는 ‘유비무환’의 출처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겨울날 일을 걱정하는 가정이 한둘이 아니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절기상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이 지났고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도 어저께 지났다. 

조석으로 기온이 크게 떨어져 본격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월동 준비를 서둘러야겠다. 

지금 가정마다 김장 담그기가 한창이다. "시월은 맹동(孟冬)이라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남은 일 생각하여 집안일 마저 하세. 무우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정히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도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 방고래 청소하고 바람벽 매흙 바르기, 창호도 발라 놓고 쥐 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울타리 치고 외양간에 거적 치고, 깍짓동 묶어 세우고 땔나무 쌓아 두소. 우리집 부녀들아 겨울옷 지었느냐."

조선 후기 당시의 농촌 가정 상황을 읊은 시 ‘농가월령가’ 시월령(十月令)의 일부다. 추운 겨울을 앞두고 겨울나기 걱정하기는 예나 이제나 마찬가진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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