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거나 미룬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해요. 이해가 갑니다. 결혼하기 전 살 집을 마련해야 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업도 가져야 하니 요즘처럼 힘든 상황에서 선뜻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참 어려운 듯합니다.

그러나 결혼 준비를 부부가 돼 앞으로 살아갈 행복한 삶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면 굳이 미루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가족이 돼 살려면 서로에 대한 예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결혼 전 ‘내 인격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법’과 ‘상대의 인격을 내가 수용하는 법’을 익혀야 비로소 신뢰와 사랑이 깊어질 겁니다. 이렇게 내어주는 법과 수용하는 법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인격’의 수준이 결정되곤 합니다.

「긍정의 생각」(김형수)에서 저자는 어느 대학의 강의실에서 일어난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성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다음 강의시간까지 자신의 인격을 어떻게 갖춰 갈 것인가에 대한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 가서 자기계발서 등을 읽고서 작성했습니다. 누군가는 톨스토이의 「인생론」이라는 책을, 누군가는 새무얼 스마일즈의 「인격론」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 중에는 직장생활을 하며 야간대학을 다니던 오대리도 있었습니다.

모두 제출했지만 단 한 명, 김지영 양은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왜 제출하지 않았죠? 다음 시간까지 제출하세요. 그리고 다음 주에 발표토록 하겠어요."

발표 날이었습니다. 교수는 두꺼운 한 권의 노트를 지영 씨에게 주면서 발표하라고 했습니다. 지영 씨는 발표 전에 ‘인격은 우리가 행복을 누리기 위한 자격을 뜻한다’라고 칠판에 쓴 뒤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보고서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 노트는 제 일기장입니다. 행복을 누리기 위해 인격을 연마하는 것이고, 그래서 인격을 갖추는 것은 곧 삶의 행복을 추구해 가는 과정입니다.

저희 아빠는 환경미화원으로 30년이나 일해 오셨고, 엄마는 경동시장 가판대에서 나물 장사를 하십니다. 제가 지금까지 배운 게 있다면 소박한 밥상과 나물 반찬, 그리고 아빠가 좋아하시는 청국장 냄새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저희 3남매는 단 한 번도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이 저희에게 심어 준 인격은 ‘소박함에도 감사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훌륭한 정치가나 위인들처럼 살고 싶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인격은 제가 살아온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인격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행복 역시도 아주 작은 밥상머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저희와는 달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행복하고, 이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검소하고 소박하며 감사할 줄 아는 인격을 배웠을 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인격을 더욱 소중히 여기려고 합니다. 저희 가정의 작은 행복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표가 끝나자 모든 학생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반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오대리는 그녀를 좋아하게 됐고, 그래서 편지를 썼습니다.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한다면, 사랑을 누릴 자격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면,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지영 씨를 정말 열심히 사랑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온갖 것을 다 가져야만 행복하리란 환상을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겁니다. 그러나 행복은 꼭 그런 조건들 모두를 갖춰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모님에게 배운 지영 씨의 아름다운 인격이 지영 씨의 행복한 결혼생활로 이어졌을 거라고 믿습니다.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바로 인격을 갖추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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