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 가평군 관광전문위원 경영학 박사
이상용 가평군 관광전문위원 경영학 박사

중국 삼국시대, 유비의 책사 제갈공명의 전략에 따라 ‘천하삼분지계’가 완성된 전쟁이 바로 적벽대전이다. 대륙 패권의 흐름을 바꾼 적벽대전에서 조조는 80만 대군을 동원하고도 5만의 오·촉 연합군에 패배해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도망쳤다.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난 뒤 내뱉은 조조의 말은 "내가 차 한 잔에 패배할 줄이야!"라는 한마디 탄식이었다. 

당시 조조는 손권, 유비에 비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라의 기틀과 막강한 무력을 갖춘 강자였다. 그는 필생의 대업인 적벽대전을 치르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양쯔강 유역의 적벽으로 출병했다. 대외적 명분으로는 한실을 재건하고 나라를 통일하겠다는 목적이지만, 내심은 다른 데 있었다. 평소 흠모하던 여인이 오나라에 있었는데,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녀를 데려올 수 있을 거라는 사사로운 욕심이었다. 

조조가 80만 대군으로 공격해 오자 손권과 유비는 5만의 병사로 연합군을 결성하고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대비했다. 무려 16대 1의 전력으로 승산 없는 전쟁을 준비해야 했지만, 그곳에는 천하의 대도독 주유와 천하의 책사 제갈공명이 있었다. 오·촉 연합군이 내세운 전략은 화공작전이었다. 조조의 대군을 효과적으로 물리치기 위해서는 화공작전 외에 방책이 없었다. 세부적으로 이간계, 사항계, 연환계 등 수많은 배경 전략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화공작전에 필요한 동남풍이었다. 모든 대비 태세를 마친 다음 양쯔강 적벽에서의 대회전을 기다리던 마지막 날 밤, 제갈공명과 주유가 마주 앉아 최후 전략을 의논하고 있었다. 그때 미닫이문 밖에서 주유의 아내 소교가 찻잔을 든 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초저녁에는 북서풍이 불어 조조에게 유리합니다. 밤이 깊어지면 반대로 남동풍이 불어 우리가 유리하겠지만, 조조가 그때까지 공격하지 않고 기다려 줄 리가 만무합니다." 제갈공명이 주유에게 하는 말을 듣자마자 소교는 홀홀단신 조조의 대군영으로 향했다. 그녀에게는 무기 대신 다도(茶道)를 위한 찻잎과 차를 끓이고 행다(行茶)를 하기 위한 다기들이 준비돼 있었다.

초저녁, 공격 개시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적벽의 바람은 예상대로 북서풍이었다. 조조는 무장을 한 채 휘하 장수들과 함께 일전을 위해 나섰다. 적벽 강안에 80만 대병력이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소교가 다도를 준비하고 조조를 멈추게 했다. 소교의 자태를 보자 조조의 가슴이 격동하기 시작했다. 

"차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맛보겠다." 그가 짐짓 점잖게 말하자 그녀는 "먼저 차를 드시고 가시지요"라며 유혹했다. 북서풍이 동남풍으로 바뀌기 직전, 절체절명의 시각에 조조는 그만 미인계에 넘어가고 말았다. "승상은 다도에 대해 너무 모르십니다. 차는 음미하면서 마셔야 합니다." 소교는 찻잔이 넘치도록 부었다. 찻잔이 넘친다고 조조가 걱정하자 그녀가 대답했다. "승상께서는 왜 명분 없는 전쟁을 고집하십니까? 승상의 가슴이 이 넘치는 찻잔과 같습니다."

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기다리던 동남풍이 불어오자 화공작전이 시작됐다. 조조군의 선박과 병졸들은 화공작전에 말려들어 처참하게 스러져 갔다. 동남풍이 미친 듯 불어대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자 적벽의 산과 강은 병사들의 시신으로 뒤덮였다. 이렇게 조조의 사사로운 감성에서 시작된 적벽대전은 결국 소교의 차 한 잔으로 인해 완벽한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에게 아름다운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수많은 목숨이 걸린 전쟁에서 지도자의 판단이 잘못되면 곧바로 패배가 찾아온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는 찰나, 차 한 잔 때문에 공격시간을 놓쳐 버린 조조의 감성 리더십은 역사를 바꾸고 말았다. 이렇듯 필생의 대업을 앞둔 지도자의 차 한 잔과 평소 필부가 음미하는 차 한 잔의 무게는 사뭇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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