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세계에서 가장 긴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는 ‘쥐덫:The mouse trap’이란 연극은 고도의 트릭과 미스터리로 현대 추리소설 문단 최고봉의 자리를 차지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다. 오래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공연을 가진 바 있는 이 연극에서 ‘보일’역의 여배우가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 한쪽이 썩어 가는 것을 모르고 있어요. 손을 쓸려고 하면 그땐 이미 늦어요." 목조가옥에 사는 미국 친구의 흰개미 공포증은 ‘떼 지능(swarm intelligence)’이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집 무너짐을 걱정한다. 

작게 조금씩 스며드는 위험은 기준의 위태로움과 안이성, 견고함을 더해 주고 예측가능한 위험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은 그냥 기준이라는 틀에 맞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방치 내지는 무관심, 쉽게 배제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조직관리이론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조직은 일정한 공동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인간들의 복합적 의사결정의 체계라고 한다. 여기에서 의사결정이란 조직과 개인이 그 어떤 뜻을 합치고 그 뜻을 발전적 조직행위로 확산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조직과 개인의 뜻을 뭉치고 가꾸면 가치관, 문화가 되기 때문이다.

11월 7일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7)’가 이집트에서 열렸다. 

정부는 설정한 온실가스 40% 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NDC)가 제조업에 기반한 한국 경제의 현실에서 매우 야심차지만, 글로벌 기후 대응에 기여하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목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며, 신재생과 원자력 등 과학과 혁신에 기반한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에너지 믹스를 통해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데 노력할 예정이라고 했다. 

문제는 기준과 리스크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개도국, 후진국은 이 감축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 세계 탄소배출 3%밖에 안 되는 아프리카 54개국 입장은 그 기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까? 

ESG에 대해 경영학이 아닌 금융투자와 자본시장의 언어로 오랜 기간 연구해 온 본인 역시 이 문제는 대답하기가 어려워진다. 지정학과 세계사적 측면을 고려한 그 가운데 경제력과 후진성의 평균 상향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를 거쳐 이제는 ‘기후재앙’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일 만큼 위기의 강도와 문제의식은 높아져 최근의 화두는 ‘기후정의’다. 

오염은 부자 나라와 기업들이 만들고 그 피해는 가난한 나라들, 사람들이 뒤집어쓰는 현실을 정의를 앞세워 바꾸자는 것이다. 그린뉴딜도 미국 내 기후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을 목표의 주된 축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하시나 총리는 부자 나라들의 지도자들을 향해 탄소배출량을 줄인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동시에 개도국들의 ‘탈탄소화’를 돕기로 한 약속도 지키라고 촉구했다. 빈국을 대표한 하시나 총리의 제안은 결국 기준과 리스크의 관점이 다른 충돌인 것이다. 지구에 조금씩 소리 없이 다가오는 위험과 대비에 관한 어젠다를 말한다.

ESG를 두고 월드 클래스라는 기준을 갖다 대며 수치화된 데이터를 요구하는 것도 결국 이 문제의 종착역이다. ESG는 재무제표 외 보이지 않는 가치를 기준으로 지속가능한 기업경영을 지향함으로써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는 큰 흐름인데, 작고 보이지 않는 위험들을 먼저 예견하고 대비하는 무형의 리스크 관리는 개별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리스크자본화를 이뤄야 한다. 

리스크의 관리와 영향력 분석, 얻고 잃는 것 고찰 등등 전략의 기초화·기본화로 경영의 밑바탕이 돼야 한다. 정량적 수치화된 데이터를 기준으로 통일화·등급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과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공유가치창출(CSV), 지속가능경영(CSM) 개념은 의미와 실천활동은 좋았지만 성과에 미치는 정량화된 데이터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량적 데이터만을 기준으로 ESG를 통한 기업성과 평가의 핵심 지표로 삼는다면, 또 그것만이 ESG가 추구하는 목표라고 하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어렵다. 

데이터를 거대 담론으로 치장하고 그에 맞는 평가부터 하려고 시도해선 안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서 보이는 정량화 데이터를 우선 요구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개선, 점진적 정착이라는 표현도 ESG 경영에 어울리지 않는다. 재무성과의 합리적 평가와 더불어 기업가치의 증대는 관리하는 지표로 명확하게 틀을 짜기보다는 생산성과 재무적 연결고리, 복지와 개인 존중, CEO의 경영철학 등이 기준과 리스크자본으로 먼저 자리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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