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삶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20세기에 태어나서 21세기에 살았던 어떤 존재가 가치 있는 일과 상상을 하고 행위를 실천하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제7회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한 국립인천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차기율 교수의 예술관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를 타이틀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언어 이전의 감각세계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도시 시굴-삶의 고고학’이라는 주제로 태초의 지구,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세상에 관한 고고학다운 상상력을 더한 작업들을 선보이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렇게 돌과 나무, 금속 따위 다양한 소재로 자연이 순환하는 세계를 표현하며 구도자나 순례자처럼 묵묵히 예술활동을 펼치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 반열에 올랐다.

박수근 미술상 운영위 관계자는 차 교수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자신을 겸허하게 마주하며 예술활동을 해 온 작가로, 박수근 화백이 치열하게 추구했던 길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차 교수를 박수근 화백의 반열에 올린 엄청난 평가인 만큼 차 교수에게는 부담이고 걱정이다.

"우리 시대가 가진 뿌리 깊은 학연과 지연의 지탄 받는 틀은 사회뿐 아니라 미술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상업주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가치를 실천하고자 묵묵히 걸어왔다는 점을 예쁘게 봐주신 과찬이고 영광스러운 평가입니다. 어찌됐든 저는 상을 받으면서 기득권자가 됐습니다. 기득권자 처지에서 영광과 독식의 걱정도 있고, 한편으로는 선하고 진실함을 추구했던 박수근 선생처럼 평가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의무와 부담을 함께 짊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차기율 인천대 조형예술학부 교수가 교수실에서 자신이 수집한 돌과 암석, 동물뼈 등이 놓인 진열장을 보여줬다.
차기율 인천대 조형예술학부 교수가 교수실에서 자신이 수집한 돌과 암석, 동물뼈 등이 놓인 진열장을 보여줬다.

# 화가의 길, 그리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질문

차 교수는 경기도 화성이 고향이다. 가난한 농부의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8살 때 돌아가시고, 하루아침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6형제를 맡아 키워야 하는 고달픈 삶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남동생이 있는 서울 시흥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어린 차 교수도 시흥초등학교로 전학한다. 향수병에 시달리던 그는 노트를 온갖 그림으로 채웠고, 6학년 담임선생님은 그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화가의 꿈을 심어 줬다.

공교롭게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당대 최고의 화가인 이중섭 선생이 다녔던 오산중·고를 거치며 그곳에서 이중섭 선생과 동문수학했던 미술교사 김창복 선생을 만나며 화가의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런 호사가 패착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화가였고, 대학생들의 작품을 비평하면서 "대학에서 뭘 배우겠느냐"는 건방진 미술관이 자리잡는다. 그리고 많은 방황을 거쳐 뒤늦게 선택한 대학이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인천대학교다.

차 교수는 자연환경과 인간세계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많다. 그가 최근 관심을 쏟는 부분은 염습지다. 염습지는 생태학과 지질학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공존하면서 그 안에 인간의 고단한 삶도 녹아들었다고 차 교수는 설명한다.

황해바다 염습 환경을 작품 테마로 삼았다. 갯벌을 채취하고 굽는 작업을 하면서 인간의 가치와 지향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의 원형은 어디서 왔고 어떤 지향을 가지고 여행하고 종착점으로 가는가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환경론자 처지에서 자연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작품에서 질문을 던지고 관람자들 스스로 답을 내도록 유도한다. 원하는 답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과 판단하기를 기대한다.

"자연의 질서와 인간문명이 쟁투하듯 상충하는 세계 속에서 상생의 접점을 찾아가는 작업이 저의 작품세계입니다. 문명을 배척하고 계몽하듯이 표현하려고 작품을 하지는 않습니다. 작품은 곧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차기율 인천대 조형예술학부교수가 지난 9일 인천대학교 내 교수실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차기율 인천대 조형예술학부교수가 지난 9일 인천대학교 내 교수실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순례자나 구도자를 투영한 프로젝트

이렇게 자연과 인간의 상관관계를 말하는 차 교수의 작품세계는 ‘순환의 여행’으로 표현함 직하다. 순환의 여행은 ‘방주와 강목 사이’라는 부제가 따른다. 

방주는 노아의 방주를 뜻하지만 종교가 아닌 서양문명의 축을 상징하고, 강목은 본초강목 중간 정도의 분류단계로서 동양사상의 대표로 아시아를 표현했다.

자신의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에게 방주와 강목 사이, 그러니까 서양과 아시아의 접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태어나고 성장해서 죽음에 이르는 수많은 순환을 함축하는 의미로 동서양 구분이 없어지고 하나가 된다는 설명도 붙인다.

그가 추진하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도시 발굴이다. 땅속에 묻힌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의 작은 기억과 파편들을 찾는 과정이다. 홍천에서 초등학교 분교 교실을 20여 일에 걸쳐 발굴하기도, 회장으로 몸담은 전곡포럼에서 유적지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번 정도의 발굴로 고고학다운 유추 방식과 상상력으로 물질의 파편을 꿰맞추고 시대를 유추하기도 하면서 작품세계를 펼쳤다.

"발굴 프로젝트는 인내심과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작은 파편의 성격을 규명해 그 시대 이야기를 연결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태초의 생각과 신의 본을 뜬 인간의 원형을 역추적하면서 이 시대의 가치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는 일이 지금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도시 발굴과 순환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의 작품에서는 순례자나 구도자의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작품을 보는 관람자 스스로 순례자의 처지에서 과거를 여행하는 듯한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작품을 이해하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 내일의 작품세계

차 교수는 한국에서 간판으로 평가하는 중요한 상을 받은 사실이 영광스러우면서도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가 화가로 살아온 길은 어떤 영광을 위한 삶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몫만큼이기 때문이다.

미술계의 기대도 있었지만 대학 강단에 선 뒤 작품활동에 소홀하다 보니 많은 질책도 받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예술가의 길을 꾸준히 가겠다고 다짐한다.

"모교인 인천대에 쏟는 애정만큼 예술가로서 빛나고 우뚝 선다면 이 역시 모교를 위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예술가의 길을 꾸준히 가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자 줄곧 몸부림치렵니다."

한동식 기자 dshan@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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