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는 전임 정부의 대통령 취임사에서 크게 히트한 명연설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가 측근들의 무능, 비리, 반칙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5년 단임으로 끝났다. 

그러면서 이 사회에 ‘공정’이란 단어를 부각하며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버금가는 뜨거운 화두를 던졌다. 

이는 시대정신처럼 회자돼 정권 교체의 발단이 됐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과거부터 뿌리 깊은 ‘시험 사회’이기 때문에 이는 우리의 사회구조와 국민 의식 문제로 고착돼 정의로운 교육으로 나아가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는 ‘전사(戰士) 사회’의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에서 형식적 기회균등, 즉 공정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보여 줬다. 

전사 사회가 무엇인가? 그것은 시험에 의해 선발된 소수의 전사와 다수의 평민, 두 개의 계급만이 존재하는 사회다. 문제는 전사가 모든 사회적 자원과 명예를 소유하기 때문에 이른바 제로섬 게임의 승자가 돼 모든 것을 독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전사의 자식은 전사로, 평민의 자식은 평민이 되는 카스트 구조를 악화시킨다. 

따라서 사회개혁가들은 잘못된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며 전사 계급의 자녀와 평민 계급의 자녀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를 줘 시험에서의 공정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형식상의 공정성을 구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회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도 정의로운 사회인가? 여기서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우리는 치열한 시험 경쟁에 의해 소수의 전사 계급(SKY 출신자)과 다수의 평민 계급(비SKY 출신자)으로 양분화돼 있다. 

문제의 배경은 무엇인가? SKY와 비SKY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동일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계급과 지역에 따라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부유한 특정 지역에 살수록 SKY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

최근 한 정책 세미나는 SKY대 입학 가능성에서 소득이 높은 가정(10분위)이 소득이 낮은 가정(1분위)의 5배임을 보고했다. 이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 설령 모든 학생이 완벽하게 똑같은 확률로 SKY에 들어간다고 해도 이것은 결코 좋은 사회,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왜냐면 전사 사회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전사와 평민, 두 계급만 존재하듯이 한국 사회는 SKY와 비SKY 대학의 전사 사회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기회균등과 공정보다 더 큰 가치다. 즉, 공정과 기회균등은 정의의 부분이며, 또한 공정이 정의를 보증하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교육 정의는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똑같은 기회를 소유해도 전사 계급에 의한 독점은 유지된다. 

실제로 최근 5년간 판사 임용에서 80% 이상을, 최근 10년간 검사 임용에도 64.1%를 SKY 출신이 차지했다. 전사 되기의 단일 가치와 단일 기회가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현재 한국의 교육체제는 SKY(나아가 ‘인(in) 서울’ 대학) 입학하기라는 단일 가치와 단일 기회를 지향한다. 이는 독점을 낳고 결국 부정의(Injustice)의 핵심이다. 따라서 독점을 해체해야 교육의 정의를 세울 수 있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가 오랜 갈등 끝에 출범했다. 이제 국가백년대계 교육에의 역할과 책임, 설계할 밑그림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는 다원적 가치와 다원 기회구조를 가진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그 중심에 교육의 정의가 확립돼야 한다.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다 해도 극소수의 학생이 들어가는 SKY 대학 독점 체제는 그 자체로 부정의한 것이다. 이는 단일한 기회구조를 가진 전사 사회와 같다. 

현재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비효율적인 낭비의 원흉이며 민주주의의 적이다. 공정이란 덫에 걸려 정의를 가로막는 우리 교육은 개별성과 다원적 평등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실현해야 한다. 이것이 정의로운 교육을 구현하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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